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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막으려면 지금 당장 투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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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주요 경제 대국의 지도자들이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기후변화 주요국 회의(MEF)’를 열고 새 기후 협약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앞두고 열리는 만큼 이번 MEF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4월 금융위기 해법을 찾기 위해 모였을 때처럼 이번에도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다.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기후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다. 중국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개발에 대대적인 투자를 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마련 중이다. 인도 역시 자체 액션플랜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은 각국의 합의만 이뤄진다면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줄여 1990년 수준 이하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워 놨다. 일본도 대규모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목표치는 2020년 이전에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세로 돌려 2050년까지 90년 수준의 절반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경제 성장과 빈곤 해결을 위해 단기적으로 계속 배출을 늘릴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2050년까지 최소한 90년의 80% 수준으로 배출 규모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이는 미국의 경우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10분의 1로 줄이고, 중국은 새로운 저이산화탄소 경제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각국에 큰 도전이다. 거대한 정책 변화를 수반하는 혁명이다.

다행인 건 명확하고 실질적인 목표에 집중한다면 이 같은 대규모 감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산림 개간을 줄이며 원자력 및 재생 가능 에너지 같은 저이산화탄소 에너지원 이용을 활성화하는 것만으로 2020년까지 감축 목표치의 70%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곱 가지 분야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 자동차 연비, 연료 이산화탄소 함유량, 가정용 설비 표준화, 산업 효율 측정, 규범 제정, 산림 개간·붕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등이다.

장기적으론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원자력 확산, 차세대 태양에너지 분야의 기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미래를 내다보고 바로 지금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야 2020년까지 CCS를 확대하거나 다른 대안 기술을 적용할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는 실력 있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필요로 한다. 전기자동차는 기반 시설의 대대적인 정비를 요구한다.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시스템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효율적인 운영 계획이 필요하다.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투자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MEF 지도자들은 지구 온도 2도 낮추기,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세로 돌리기 등 과학계가 제안한 목표들을 채택하는 데 망설여선 안 된다. 개도국들이 저이산화탄소 성장 계획을 세우고 이행할 수 있도록 금융·기술도 지원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은 기후변화를 막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설득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해법’이 있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의지와 해법을 결합시킬 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정리=김한별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