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17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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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생쥐 같은 놈. 아직도 제정신 못 차렸잖아. " 놀랍게도 철규의 입에서 그런 욕설이 거침없이 흘러 나왔다. 그뿐만 아니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철규의 주먹이 날아와 윤종갑의 따귀를 정확하게 맞혔다. 한 번의 가격으로 눈에 불이 튀는 것 같았던 것도 섬뜩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철규의 예기치 못했던 손찌검이 한껏 위축되어 있던 윤종갑을 흥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먹물을 먹었다는 위인들의 모처럼의 폭력행사는 대체로 무책임하다. 반사적인 대항폭력에 대한 방어본능이 어눌하고 허술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실전으로 담금질이 된 깡패들의 폭력은 대항폭력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예리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일방적이라는 완벽성은 유지한다.

때문에 그들의 폭력대결에 한 대 때리고 한 대 맞는다는 맞받아치기식의 형평성을 유지한다면 그건 대담성과 성취도에 있어선 이미 실패작이다.

그러나 깡패의 세계에 대한 냉정한 관찰이나 평소에 친숙한 교유를 두지 않고 있는 먹물잽이들의 폭력은 대항력에 관계없이 자신이 겨냥했던 대로 한 대 쥐어박는 순간, 이미 목적 달성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대담하게 보이지만 대체로 무기력하다.

허우대로 보나 주먹의 크기로 보나 철규와는 완력으로도 적수가 아닌 윤종갑에게 얻어 맞은 것도 그런 경험논리에서 출발한다. 헛손질 한 번 못하고 가슴팍에 일격을 당한 철규가 비틀거리며 쓰러질 낌새를 보이자, 윤종갑의 입에서 득의에 찬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말로 해 이 자식아. 니가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해?" 애간장이 타는 것은 몇 발짝 물러서서 망만 보기로 했던 태호였다. 처음부터 윤종갑을 닦달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서 간여하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철규가 대처하고 있는 꼴을 바라보기만 하자니, 소꿉놀이도 그런 소꿉놀이가 없었다. 그래서 태호는 해서는 안될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질렀다.

"한선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연습하고 있어요?" 해서는 안될 말이었지만, 태호의 한마디에 철규가 충격을 받은 건 확실했다.

비틀거리던 그는 곧바로 상반신을 곧추세우고 윤종갑을 향해 총알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복부에 일격을 가하는 철규의 이마를 두 손으로 껴안다시피한 윤종갑은 등 뒤에 쌓아둔 쓰레기더미에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철규는 그의 멱살을 뒤틀어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윤종갑은 철규가 잡고 흔드는 대로 턱을 들까불다가 또 다시 따귀 한 대를 덤으로 얻어맞고 쓰레기에 뒤통수를 박았다. "간사스럽기가 쪽제비새끼 같은 놈. 나이 먹었으면 나이 처먹은 값을 해야지. 여기까지 개돼지처럼 끌려온 까닭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장차 길 건너 올 생각 말고, 여기서 쓰레기나 뒤져 먹고 살아. 너 같은 도둑고양이는 여기가 살 곳이야. "

식도를 파고드는 쓰레기와 먼지 때문에 밭은기침을 토해내던 윤종갑은 그러나 아직은 실토정하고 백배사죄할 의향은 아니었다. 심약한 사람에겐 안사장의 귀띔이 모함은 아니었을까 의심할 정도였다. 과연 그는 철규의 소매를 잡고 늘어지며 시치미를 잡아뗐다.

"내가 나이 값 못한 게 뭐 있어? 내가 너희 두 놈에게 굴신을 못하도록 얻어 맞아야 나이 값 하는게야? 내가 너희들만큼 종자돈을 안 냈나?" 끝까지 자신이 저지른 치부를 숨기려는 그에게 연민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솔직하지 못한 것에 와락 부아가 끓어올랐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철규는 다시 한 번 윤종갑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나는 순간, 철규는 그에게 밀착시키고 있던 상반신을 얼른 일으켜 세웠다.

그의 반격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윤종갑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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