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 Report] 경기 바닥 논쟁 끝나 … 기업이 투자 나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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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라 밖에서는 우리더러 빨리 좋아진다는데, 우리 스스로는 확실한 회복세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혼란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럴까.

◆밖에선 우리를 좋게 볼 수밖에 없지만

국제 경제기구들이 우리 경제에 대해 좋은 소리들을 하고 있다. 원래부터 우리를 좋게 보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그렇다 치고, 비관적인 세계경제 전망을 내놓기 일쑤인 세계은행이나 크루그먼, 루비니 같은 비관론자들까지 우리 경제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 빠르게 바닥을 치고 강하게 회복될 것이라고 한다.

외국의 눈에는 우리 경제가 좋게 보일 수밖에 없다. 두둑한 정부 돈주머니, 발 빠른 그 씀씀이, 견딜 만한 금융부실, (일자리 나누기 때문이건, 무슨 이유에서건) 높지 않은 실업률 등 그 어느 것으로 봐도 어느 선진국보다 우리 사정이 낫다. 다른 나라는 죽을 쑤는데, 우리는 올 1분기에 지난해 말 수준은 해냈고, 2분기는 1분기보다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하니, 우리 것이 좋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는 앞날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지금의 상태는 민간 스스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안정 분위기 속에서 정부지출 덕분에 경기 하강을 겨우 저지한 상태일 뿐이다. 여기서 일어서기에는 뒷심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서 일어서려면, 정부 사업에 기댄 건설투자 확대에 더해 민간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투자와 소비 확대가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 민간 경제가 뒷심을 가지고 회복하려면, 그래서 주가가 더 확실한 상승추세를 타려면, 선진국 특히 글로벌 불황을 촉발했던 미국 경제가 회복되거나 적어도 바닥을 쳤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와 이토록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이든 금융안정책이든) 우리 노력만으로 또는 (환율이든 뭐든) 우리만의 여건 호전으로는 지속적인 회복세를 연출해 내긴 힘들다는 얘기다.

◆“늦어도 연말 선진국 경기 바닥 친다”

OECD 6월 보고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가 바닥으로 비교적 빨리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월 보다 대체적으로 좋아진 전망치를 내놓으면서, 일본은 이미 1분기에 바닥을 쳤거나 미국과 유럽은 2~3분기에 바닥을 친다고 보고 있다. 지금의 글로벌 불황이 몇 개월 전에 걱정했었던 것보다는 앞당겨 바닥을 치고 따라서 회복의 시점도 더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2010년에나 가야 바닥을 친다” “다시 경기가 주저앉을 위험이 크다”고 얘기하던 크루그먼이나 루비니 등도 이제는 서서히 “9월에 미국이 바닥을 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식으로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나라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다고 자신할 수 없는 상태이긴 하다(경기가 바닥을 치더라도 기업들이 확실한 경기회복세를 인지하기 전에는 고용감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개월 세계 각국은 유동성 공급과 경기부양으로 금융위기, 극심한 경기침체 등 대형 불안요인을 하나하나 해소해 왔다. 아직도 남아 있는 다른 불안 요인(각국의 가계대출, 과잉유동성, 지속 불가능한 재정적자, 유럽의 금융위기 등)들도 우리가 이미 그 존재를 파악하고 웬만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 ‘언제부터 회복이냐’는 민간이 정한다

그동안은 ‘얼마나 경기가 심하게 또 오랫동안 가라앉을 것인가’를 두고 경기논쟁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불황, 그 터널의 끝이 보이는 상황에서는 ‘바닥’이 아닌 ‘회복’이 핵심 주제로 바뀌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성장 전망치를 상향조정하기 바쁠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널려있는 불안요인을 앞세워 미약한 회복 또는 회복의 지연을 얘기할 것이다.

4월에 매우 비관적인 전망치를 내놓았던 IMF도 앞으로는 바닥과 회복 시기를 더 앞당긴 상향 조정된 전망치를 내놓을 것이다. 올 2분기부터의 강력한 경기부양, 글로벌 금융안정, 그리고 1~2분기부터의 선진 경기침체 감속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닥’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이 경기의 바닥에서 얼마나 더 머무를 것이냐가 관심이다. 그건 우리가, 아니, 우리 민간이 하기 나름이다. 선진 경기가 곧 또는 이미 바닥에 이른다고 하고 또 우리 정부가 경기부양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고 하니, 이젠 우리 기업들이 ‘긍정’의 힘을 발휘해 투자에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서가 아니다.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야, 우리 경제가 바닥에서 튀어올라 선진경제가 회복의 길로 접어들 즈음, 그 글로벌 시장을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어서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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