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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오부치 체제가 짊어진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4일 치러진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외상이 새 총재로 선출됐다.

오부치 총재는 오는 30일 일본 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다.

이번 총재선거 역시 철저한 파벌 위주로 이뤄졌다.

선거 초반 탈 (脫) 파벌의 새 전통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기대도 있었지만 투표 결과는 철저히 파벌의 세력분포에 따랐다.

최대 파벌인 오부치 (小淵) 파와 그 다음인 미야자와 (宮澤) 파가 손을 잡은 마당에 애당초 이변 (異變) 이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론조사에선 오부치가 3인 후보 가운데 가장 뒤졌다.

뿐만 아니라 해외여론도 오부치 반대였다.

미국 언론은 오부치를 '식은 피자' 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경제 문외한 (門外漢) 인 그가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일본정부 발행 국채의 신용등급을 낮추는 문제를 검토하는 등 일본으로선 치욕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이처럼 불리한 입장에서 중책을 맡게 된 오부치 차기총리는 우선 구태의연한 파벌 지도자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재 일본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현안인 경제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일본 국민들, 그리고 일본의 경제개혁을 주목하는 세계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안도감을 줄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오부치 체제는 내년 9월까지로 돼 있는 하시모토 총리의 잔여임기조차 채우기 어려운 '과도기 체제' 로 끝나고 말 것이다.

오부치 차기총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구조개혁 및 경제운용 혁신이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해소, 경기회복을 위한 항구적 감세조치, 각종 규제완화, 행정개혁, 의료보험.연금제도 개혁 등 숱한 난제 (難題)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어떻게 태클하느냐는 일본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시아경제 더 나아가 세계경제와 직결된다.

앞으로 오부치 총재에게 기대되는 것은 과감한 결단과 선택의 지도력이다.

이를 위해 일본 국민과 이웃나라들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것이다.

이같은 역할은 '인품의 오부치' 라는 오부치 차기총리에 대한 과거의 유약한 이미지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오부치 총재는 개혁플랜을 세우고도 우유부단함과 추진력 부족으로 일을 그르친 전임자의 전철 (前轍) 을 밟아선 안된다.

그것만이 일본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은 물론 아시아 전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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