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도로·보도 보행자에 '낙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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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대서 (大暑) 인 23일 오후2시쯤. 남대문시장에서 여름용 방석을 산뒤 버스를 타기위해 삼성플라자앞으로 가던 주부 이정자 (李貞子.53.용산구용산동4가) 씨는 체면을 무릅쓰고 지하보도 계단 한쪽에 주저앉고 말았다.

직선거리로 1백m 남짓한 길을 건너기위해 李씨는 수많은 계단이 있는 2개의 지하보도를 오르내리느라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2개로 나뉜 지하보도를 연결하면 편하게 건널 수 있는 길을 10분도 넘게 걷는게 말이 되느냐" 고 목청을 올린 李씨는 보행자 편의를 외면한 서울의 도로들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의 도로들이 보행자 안전성등에서 낙제점 (1백점 만점에 36.3점) 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보행환경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올상반기 시내도로에 대한 현장조사와 지역별 교통사고 통계등을 토대로 안전성.편의성.쾌적성.만족도등에 대해 조사를 실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올상반기 시내 횡단보도중 신호기준에 맞게 설치된 비율은 전체의 3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횡단보도의 신호는 횡단거리 1m당 1초에 여유시간 7초를 더해 보행신호를 주도록 돼있으나 제일생명앞 강남대로의 경우 기준보다 13~14초, 지하철 4호선 노원역 미도파백화점앞 횡단보도의 경우 11초나 부족해 보행자 안전사고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 관계자는 "96년 교통사고 사망자 8백7명중 보행자 사고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1.5%를 차지한 것도 열악한 보행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고 말했다.

또 서울시내 전체 교차로 9백97개중 횡단보도가 설치된 경우도 5백5개에 불과해 보행자들이 지하도나 육교를 건너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전체 도로 가운데 보도 (步道) 의 비율도 10%로 외국 (16%)에 비해 매우 낮았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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