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원들, 모기에 뜯기고 정처없이 떠돌고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부러 모기를 풀어 놓았느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근래 국회 의원회관 사우나에 들렀다가 들은 농담성 ‘항의’다. 지난달 23일부터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다. 안 원내대표 역시 농담으로 맞받았다고 한다. “초강력 모기를 풀어놓은 걸 이제야 알았느냐.” 요즘 국회의 한 단면이다. 국회는 열렸으되 진정 열린 게 아닌 모습 말이다. 민주당은 곳곳에서 농성 중이고 한나라당은 회의를 소집한다고 말만 할 뿐 개의하진 못하고 있다. 의원들 사이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민주당 정장선 의원)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다.

고정애·백일현·선승혜 기자

모기와의 싸움
“농성장에 밤만 되면 그놈들 온다”

민주당의 농성조는 하루 2교대 체제로 운영된다. 의원 1인당 사흘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농성조에 투입된다. 농성 기간이 보름이 넘어가다 보니 신체적 고통, 특히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의원이 늘고 있다. 김재균 의원은 “몸이 뻣뻣해지고 있다”며 “세 번을 넘어가니 힘들다”고 말했다. 최영희 의원은 “의원들이 허리가 아파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 6개를 구해 놓았다”고 했다. 민주당은 1월에도 로텐더홀에서 농성했다. 그때 추위와 싸웠다면 이번엔 모기떼와 싸우고 있다. 의원마다 모기에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고 한다. “모기장을 설치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박지원 의원은 “말 탄 장수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농성장에서) 취침하다 보니 등원하고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더라”고 전했다. 물론 “한나라당이 아무것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한 농성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장세환 의원)는 입장도 있다.

발 묶인 의원들
비상 대기령에 국회 주위 맴돌아

회기 중이고 언제든 충돌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의원들의 발을 묶어놓고 있다.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된 의원들은 “국회와 지역구를 왔다 갔다 할 뿐”(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라고 한다. 한나라당 조진래 의원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국회에 대기하고, 나머지 사흘은 지역구(의령-함안-합천)에 머문다. 농성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당 강봉균 의원도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지역구 갈 일이 있으면 내려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은 아예 장광근 사무총장 명의로 “이달 중순까지 국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기간 동안 국정보고대회를 열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6일 국정보고 대회를 한 김영우 의원은 “한나라당도 너무 힘을 못 쓰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일부 의원들의 동태가 주목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문방위 주변에선 “문방위원인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국회에 나타난다는 건 한나라당의 처리가 임박했다는 신호”라고들 말한다.

본관은 철옹성
철문, 그리고 전자개폐식 출입구 …

국회 사무처는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보안 장치를 대폭 강화했다. ‘철옹성’이라고 할 정도다. 우선 본회의장 출입구의 자물쇠 장치가 모두 전자개폐식으로 바뀌었다. 1월 농성 때 본회의장을 점거했던 민주당은 “문이 저절로 열려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요행을 바라기 어렵게 된 셈이다. 본관 출입도 ‘문’으로만 가능하도록 했다. 2층 창문 132개를 모두 20㎝만 열리는 방식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올 초 충돌 땐 수백 명의 보좌진이 창문을 넘어 본관에 들어갔다.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설혹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더라도 이전 입법 전쟁 때와 같이 의원·보좌진이 뒤엉켜 전면적인 몸싸움을 벌였던 양상이 재연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사무처는 이 외에도 본관에 CCTV 80여 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이를 지켜볼 통제센터를 마련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공사 현장을 방문하는 등 항의하자 일단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한편 한나라당 안상수,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협상하랴, 원내 전략을 마련하랴 바쁘다. 문방위의 여야 간사도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 6일에도 두 사람은 “상임위 회의장에서라면 어떤 형식의 회의든 좋다”(한나라 나경원), “끝장 토론을 하자. 하지만 상임위 회의장에선 안 된다”(민주당 전병헌)며 실랑이를 벌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