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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해질 무렵의 출출한 속을 달래려는 어부들이 술청으로 들어섰다.

철규만 속타게 기다린 지 두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서로 만나지 못한 사이의 안부를 야단스럽게 주고받다 보니 얼떨결에 배짱이 맞아 술자리에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나 식탁에 둘러앉은 어부들 주머니에서 신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핸드폰을 지니고 있어 신호음이 터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해서 간이 제 자리에 붙어 있을 겨를이 없었다.

"이봐. 그 핸드폰인가 핸드백인가 하는 것들 좀 집어던지고 다녀. 바다에 나가서 오징어나 잡을 사람들이 그게 왜 필요해? 중국집에 취직해서 자장면 배달들 다니나? 한동안 어판장에 얼굴 내밀지 못했더니 별꼴 다 보겠네. "

"이봐. 좆도 모르거든 잠자코 있기나 해. 지난번 유자망 (流刺網) 꽁치어선에서 잠수함 건져올린 후부터 뱃놈치고 핸드폰 안 가진 놈 없게 됐어. 귀머거리도 핸드폰 갖고 설치는 판국이야. 잠수함을 통째로 건져올려도 찢어지는 법이 없는 튼튼한 그물로 건져올린 꽁치들 어판장에 내려봐야 저축은 고려적 얘기고 하루살이 모면하기도 애면글면하는 꼴이 되었으니, 꽁치 잡으러 가는 척하고 자망선 (刺網船) 몰고 나가지만 알고 보면, 망원경하고 핸드폰만 챙겨 갖고 나간다는 말 아직 못 들었구만?"

"영월장 보고 돌아온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어. "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시골 장꾼이 알 턱이 있겠나. "

"가난했지만 배짱 하나 믿고 살던 뱃놈들의 생사여탈권이 핸드폰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에 매달려 있게 됐단 말이지? 그 말 진담이라면 낭패난거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고 뱃놈 고기잡아 먹고 산다는 하느님 말씀 지금은 무효됐뿌렀어? 사람이 분수 밖의 것을 탐하는 게 버릇이 되면 눈깔이 뒤집히고 눈깔이 뒤집히면 필경 실성하게 되지. 실성하게 되면 눈 내린 날 밖에 나가서 금싸라기 내렸다고 숭어뜀을 하면서 발광을 하는게야.

우리나라 경제가 요모양으로 쪼그라든 꼴이 뭔 꼴인줄 알어? 사타구니 밑까지 사그리 뒤져봤자 탱자 같은 좆밖에 없는 놈들이 제 분수는 모르고 욕심만 고래등 같아서 끓지도 않았던 냄비 뚜껑 열고 어깨춤을 추다가 쏟아진 국물에 미끄러져 척추 부러진 꼴이여. 그만할 때 정신 똑바로 차려들. 꽁치값이 똥값이란 것은 이 좌석에 앉아 있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어.

이젠 장터에서 꽁치 자배기 끌어안고 있는 아낙네를 보면, 불문곡직하고 자배기를 냅다 꼰질러박아버리고 싶어. 왜 그런지 알어? 그 꽁치값이란 게 바로 사람 값이기 때문이여.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어부들 몸값이기 때문이란 말여. 오뉴월 뙤약볕에 배때기 드러내고 누워서 열 마리에 2천원 주고 사갈 임자를 기다리고 있는 고통치를 보고 있노라면, 아침 저녁으로 쓰린 창자를 소주로 달래는 임자들 얼굴이 눈에 선하더란 말이여. 그렇다고 만의 하나 있을까 말까 한 횡재를 바라고 핸드폰 들고 설치면 미친놈 소리만 들어. "

"미친놈 소리 들으면 어때. 아이 못 낳는 년 밤마다 태몽만 꾸더라고, 아야야시대를 2년 안짝에 졸업한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 말 곧이곧대로 믿으면 그야말로 실성한 놈이지. 2년 안에 하늘에서 금싸라기라도 쏟아진다는 일기예보라도 있었나? 미국놈들은 우리나라에 투자할 돈 옛날부터 따로 싸들고 지켜보고 있었나? 서둘러서 될 일이 따로 있지.

내가 보기엔 졸업한다는 2년이 지나도 국수틀에서 국수가락 빠지듯 실업자들만 줄줄이 쏟아져 나올텐데 졸업은 무슨 억지춘향이여. 졸업이 웃겠다 웃어. 4년까지 갈지 5년까지 갈지 앞이 안 보이는 판국에 쥐똥만 떨어지는 천장이나 바라보며 하늘에서 돈벼락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까? 남 보기엔 다소 미련한 놈으로 보일지라도 핸드폰이라도 사들고 다니다가 남 먼저 신고하면 그게 바로 목돈마련대책 아닌가.

자네 말처럼 열 마리에 2천원하는 꽁치 잡아봤자, 애꿎은 허리만 휘는 것이라며?"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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