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개인의료 코드'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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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모든 시민에게 고유한 컴퓨터 코드를 부여, 개인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의료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추진중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워싱턴 포스트지는 최근 클린턴 행정부가 모든 미국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의료기록을 추적할 수 있는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을 준비중이라고 보도하며 이를 둘러싸고 '의료 진료체계 향상' 과 '개인의 사생활 침해' 라는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보건부는 지난 96년 마련된 '건강보험법' 에 따른 조치의 일환으로 전 국민 의료기록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을 벌여왔다.

먼저 모든 시민에게 기존 사회보장번호처럼 생년월일이나 태어난 곳의 경.위도 등 개인별로 독특한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전 생애에 걸쳐 치료받은 질병기록과 함께 병원.의사의 진료기록을 전산화, 중앙컴퓨터에 보관시킨다.

필요한 경우 고유코드를 입력해 관련 의료기록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계획에 적극 찬성하는 공공의료정책 연구원과 보험회사 등은 환자들이 자신의 옛 의료기록을 얻기 위해 병원측과 싸울 필요가 없게 되며 불필요한 진료를 방지, 의료비를 낮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질병에 관한 전국적인 데이터베이스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며 의사들은 환자가 병원을 옮기더라도 일관되게 환자의 건강상태를 관찰할 수 있어 그 효과가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의료정보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추트 박사는 "환자를 앞에 두고 있는 의사가 단 한번의 컴퓨터 조작으로 과거의 병력.진료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적이다.

인프라 확대차원에서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 에 의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일 뿐 아니라 의사.환자 사이에서 필수적인 솔직한 의사소통에 장애요인이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즉 자신의 모든 의료기록이 공개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민감한 이야기' 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환자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많은 의사들과 사생활 보호주의자들은 건강.질병에 관한 정보는 현재 사생활 차원에서 강력히 보호받고 있는 재정.범죄기록과 연결돼 있어 개인의 의료기록 공개는 재정.범죄기록까지 공개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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