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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미국에 영공 개방 ‘신 밀월’ 무드 고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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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6~8일)을 앞두고 양국 간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은 4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으로의 미국 물자와 병력 수송을 돕기 위해 자국 영공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영토를 통해 매년 수천 회의 수송 비행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8월 중순 아프가니스탄 대선을 앞두고 아프간 내 탈레반 세력 소탕을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는 앞서 3월 미국의 대테러전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이 러시아 철도를 이용해 아프간으로 군수지원품을 수송하는 것을 허용한 바 있지만 영공을 개방하는 것은 처음이다. 방송은 “이번 합의가 미·러 양국의 관계 개선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르게이 프리호디코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도 3일 “오바마 대통령의 방러 기간 중 아프간으로의 미군 화물 운송에 관한 양국 간 협정이 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현지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프리호디코는 “이 협정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아닌 미국 군수물자의 운송에 관한 것”이라며 “육로와 항공 수송 모두를 포괄하지만 특히 항공 수송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미군 병력이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측의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다.

아프간 대테러전의 주요 보급로 역할을 해온 파키스탄을 통한 물자 수송이 탈레반 반군의 공세 강화로 난관에 부닥친 상황에서 러시아의 영공 개방은 미군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20일 대선을 치르는 아프간 정세 안정을 위해 탈레반 반군 소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2일부터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의 탈레반 거점을 장악하기 위해 미 해병대 4000명을 투입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연말까지 아프간 주둔군 규모를 지난해의 두 배 수준인 6만8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메드베데프, 핵 군축 협상에도 기대 표시=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주 이탈리아 언론과의 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전략무기감축협정에 관한 합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핵군축 문제는 동유럽 미사일방어(MD) 문제와 연계돼 있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조지 W 부시 정권은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D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했지만 오바마 정부와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폴란드와 체코에 MD 기지를 건설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강하게 반발해온 러시아는 새로운 핵 군축 협정 체결을 MD 계획 철회와 연계시켜 왔다. 오바마와 메드베데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1991년 체결돼 올해 말 만료되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할 새로운 핵 군축 협정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각각 2200개와 2790개 수준인 미국과 러시아의 핵탄두 수를 1500개 이하로 줄이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핵 없는 세상’은 오바마의 오랜 꿈=뉴욕 타임스는 5일 ‘핵 없는 세계’는 오바마의 오랜 꿈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컬럼비아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3년 대학 잡지 ‘선다이얼’에 기고한 글에서 “소련의 핵 공격을 당할 경우 혹독하게 보복한다는 생각은 군산복합체의 이익만 반영한 것”이라며 미국의 핵 군비 강화 정책을 비판하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런 오바마의 생각은 ‘순진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오바마는 이를 의식한 듯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한 연설에서 “나는 순진하지 않다. 핵 없는 세계는 쉽게 성취될 수 없다.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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