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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위력 보여준 일본 국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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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작은 해프닝을 계기로 1987년 단행된 일본 철도 민영화의 교훈을 새삼 떠올렸다. 일본의 철도는 승객의 눈높이에서 진화를 거듭해 편의성에서 자동차를 앞서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열차가 일반실과 특실로 차별화돼 있다. 열차의 등급도 완행부터 초특급까지 세세하게 나뉘어 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승객은 승차 목적에 따라 역마다 서는 완행부터 논스톱으로 달리는 초특급을 얼마든지 골라 탄다. 도중에 완행·특급을 자유자재로 갈아탈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최근 개통된 일부 노선에 이런 시스템이 처음 도입됐다고 한다.

일본의 편리한 환승 시스템도 감탄할 만하다. 환승역에 내리면 옮겨 탈 기차가 바로 플랫폼에 들어오기 때문에 오래 대기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해선 ‘다이야’라고 불리는 열차 시각표의 정교한 설계와 운용이 필요하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고도의 운영 노하우가 수준 높은 철도 서비스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승객을 배려한 철도 인프라도 장점이다. 한국에선 열차에 오르내릴 때 대부분 계단을 밟아야 한다. 장애인의 휠체어나 바퀴 달린 여행가방이 바로 지나갈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계단을 거칠 필요가 없다. 교통 약자(弱者)의 입장을 배려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시스템이다. ‘예술의 경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신칸센 안으로 들어가보자. 앉아서 다리를 뻗으면 영락없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이다. KTX에서 낯선 사람과 무릎과 무릎이 닿을 때마다 느끼는 무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역방향 좌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신칸센은 지정석과 자유석이 구분돼 있어 자리에 따라 약간씩 할인도 된다. 이 표는 한번 끊으면 사흘가량 유효하므로 일정이 변하기 쉬운 출장·여행에 요긴하다.

이 모든 서비스는 국철의 민영화를 통해 다져졌다. 여기에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역별 사철(私鐵)이 가세하면서 일본은 철도 천국이 됐다. 7개사로 분할된 민영 JR 가운데 동해·동일본은 취업전문사 리크루트 조사에서 도요타자동차·파나소닉·시중은행을 밀어내고 입사 선호 1, 2위를 휩쓸었다. 신칸센은 이런 실적을 앞세워 최근 고속철도 건설에 나선 미국 시장 공략에도 유리한 고지에 서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일제가 1905년 대륙 침략·식민 수탈을 위해 경부선을 부설한 이후 노선은 비약적으로 늘었지만 기본 시스템은 크게 바뀐 게 없다. 일본의 편리한 시스템은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다. 우리 국민도 일본인과 비슷한 철도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