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실명비판'독설 강준만 전북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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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팩시밀리를 통해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을 했다. 하지만 표현하기 힘든 부담감이 밀려왔다.

언론을 피하면서 독설과 편견의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강준만 (42.전북대 신방과) 교수를 만나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날 전주는 온통 장마구름에 싸여 있었다.

학교앞 레코드가게에서 서태지의 새 음악이 흘러나왔다. 강교수가 '억압의 고리를 푸는 상징' 으로 해석했던 대중음악인. CD 한장을 사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그것을 건네주며 시작한 인터뷰.

- 서태지를 지금도 듣나. 이번 것은 실험음악 쪽인데 비평가에 따라 평가가 좀 엇갈린다.

"신문을 통해 새 앨범 소식을 알았다. 음악 자체에 대해선 말할 처지가 아니고 서태지의 상업주의를 비난하는 톤의 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중문화시장에서 자본의 논리, 즉 상업주의를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가.

파렴치한 행위만 문제일 뿐, 시장원리 속에 있는 상업주의는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

- 강교수가 '인물과 사상' 을 통해 특화하고 있는 '실명비판' 도 상업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센세이셔널리즘에 입각해 자극을 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명인사를 도마에 올려 뭔가를 얻어내자는 심리의 발로라는 식이다.

"쥐뿔도 없이 설친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짚어봐라. 우리 지식인들이 습득하고 있는 나쁜 처세술중 하나는 바로 추상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반향이 있을 리 만무하다.그래서 내가 나서서 실명비판의 장을 열려는 거다. "

- 그래서 지금은 좀 가소롭더라도 50~60대에 어떻게 하는지를 두고보라고 벼르는 건가.

"그렇다. 진보운동가든 지식인이든 과거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에 깔고 지금 그냥 안주하는 사람이 숱하다.

때론 그 모습이 역겹고, 때론 추하기까지 하다.내가 가는 지식인의 길은 신화 만들기가 아니라 다 소모하자는 것이다."

- 세상이 변할 때까지 글로 매질을 가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상을 너무 단순화해 편견의 잣대로 재단한다는 비판도 많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동어반복적 쏟아붓기식 글쓰기는 필요악으로 본다.

공격타깃을 명확히하는 차원에서 단순화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거듭 강조하는 실명비판. 반성하고 바꿀 때까지 퍼부어야 한다."

- 비판에 대해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서운함은 없나.

"우리 사회에선 논쟁 자체도 힘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풍토다.

같은 편끼리만 논쟁을 허락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만일 나의 '인물과 사상' 이 지금의 2천8백부 독자수준이 아니라 10만부.1백만부가 팔리는 매체라면 그들이 그렇게 대응하진 않을 것이다. "

- 그게 단순히 양의 문제인가. 비판하는 방식의 문제. 스스로가 '편견과 독설의 글쓰기' 를 인정하듯이 말이다. 아니면 본인의 감춰진 콤플렉스의 발로이거나.

"내 작업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강준만 식의 논쟁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논쟁할 의향이 없도록 만드는 약점이 있다' 고 지적한다. 그건 내 한계이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힘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남의 비판적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일일이 변명을 하는 게 구차스러워서다.

바로 그 다음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로 말을 이어간다. 편견은 내 과거사의 산물이다. 이북출신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살면서 나와 가족들은 거의 외토리였다.

아버지는 대개의 이북출신자들이 즐기는 지역뭉치기를 싫어했다. 어쩌면 나는 순수 호남인 부류에도 끼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나의 지역주의 혐오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호남편들기에 나서지 않았는가. 시민운동가 소준섭씨로부터는 김대중주의자라는 호칭을 들었고.

"나 역시 호남 지역주의를 혐오한다. 그러나 호남차별의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편들기에 나선 것 뿐이다."

-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지식인 계층의 한사람으로서 논리적 비판이나 대안제시보다 우선은 '물어뜯기' 에 매달리겠다는 스스로의 표현이나 방식 모두 지나친 것 아닌가.

"지식인은 입만 열면 '대안있는 비판' 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장애물이 있는데 무슨 대안이 필요한가.

우회하자는 건가. 아니 그 벽을 부수고 넘어서는 것만이…. "

- 강교수의 공격적 성향은 그래서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어느날 글쓰기에 회의를 느끼고 펜을 던질 우려를 해본 적은 없나. 가령 에너지가 달려 잠시 절필을 한다거나.

"지금은 아직 공격적 에너지가 충만하다. 또 내 작업이 너무 재미있다.

한달에 2백자 원고지로 5백~6백장. 갈수록 공격적 성향도 되살아난다.

나중에 체력의 한계로 주저앉을 수는 있겠지만 당장 그럴 우려는 없다. "

- 다시 지식인 일반론을 말하고 싶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고의 균형 혹은 가치중립적인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전혀 무의미한 일인가.

"나 역시 모든 사안은 단순하기보다 양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상황론을 말할 수밖에 없다. 2010년께 가능할지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그것마저 내 편견일지 모르겠다만. "

- 그러면 오늘 이 땅의 지식인들은 어때야 하나.

"아무런 기대감도 없다. 그들은 이름을 알리려는 일념으로 언론에 유화적인 제스처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주공격 대상을 언론으로 삼고 한편에서 부당한 지식인을 비판하는 것이다.

가령 지금 나 홀로 벌이고 있는 언론비판에 10명의 학자.교수만 동참해 준다면 근본적인 언론 구조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

- 최근 강교수께서 목청을 높이는 '입장주의' 도 비슷한 차원 같은데…. 카멜레온적인 변신과 비슷한 것인가.

"그렇다. 자신이 처하는 입장에 따라 스스로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 자신이 선택한 입장에 따라 새롭게 변신하고 무섭게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입장주의는 시대 최고의 처세술로 추앙받는 듯하다. 심각한 문제다."

-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숨이 가쁘다. 잠시 사변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커뮤니케이션 전공교수로서 개인이 가동하는 통신장비는 뭔가. 사실은 왜 전화를 받지 않고 팩스로, 그것도 선별 응답방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묻고 싶은 거다.

"삐삐.핸드폰은 물론 없다. 인터넷은 보조자를 통해 필요시 사용하는 쪽이다. 전화마저 폐쇄하고 사는 것은 내 편의를 위해서다.

원고청탁.강연요청에 일일이 대응하다간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잠시동안만 팩스로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너무 편해 한동안 더 지속해야 할 것 같다. 오해를 하는 사람에게 양해를 바랄 뿐이다. "

- 글쓰는 작업에 슬럼프가 닥치면 어떻게 푸나.

"짧게 자주 오는 편이다. 등산과 자전거 타기, 그리고 두 딸과 얘기하고 노는 것으로 족하다. 다른 취미는 없다. "

- 초기 글에 비해 최근작은 글의 세련미가 매우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면.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일부 그런 부분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일단 원고를 넘기고 나면 '다시 쳐다보지 말자' 주의로 일관한다."

이렇게 강준만 교수와의 인터뷰는 끝났다. 학교 연구실에서 전주역으로 가는 길에 그는 몇마디 말을 덧붙였다.

"주류진입은 힘겹다. 그들의 폐쇄성을 뚫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비주류로 주류를 공격하는 건가. 그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아웃사이더, 느낌이 아주 좋다. 나는 그렇게 힘겨운 아웃사이더의 길을 선택해 가련다."

온종일 오락가락하던 장마비가 조금씩 굵어졌다. 아웃사이더. 강교수의 뚝심 같기도 하고 얼핏 스치는 고독 같기도 한 그 단어가 서울로 오는 열차 속의 기자 뇌리를 내내 때렸다.

만난사람=허의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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