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짝짓기’류의 TV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댄스 타임이다. 아이돌그룹이나 댄스그룹 멤버들이라면 이럴 때 점수를 따야 한다. 음악에 맞춘 그들의 몸놀림은 재빠르다.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조명, 딱딱 찍어 주는 편집 기술과 ‘댄싱 머신’ 등의 문자가 더해지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어떻게 해야 춤을 잘 추는 것처럼 보일지에 집중하며 그들은 숨가쁘게 ‘움직’인다.
#콘서트장에 가 봤다. 국내에서 ‘가창력하면 첫손 꼽히는 남자 가수’의 무대였다. 기대만큼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가끔씩 보이는 목의 힘줄은 가창력의 원동력처럼 보였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고음을 절규하듯 토해 내면 객석에서도 열광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어떻게 해야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갑작스레 죽었다. 생전 그의 모습 중 가장 기억되는 건 춤일 것이다. 그의 춤은 최근 경향으로 보자면 ‘팝핀(pop-pin)’에 가깝다. 그의 등장 이후 춤은 서서 꺾는 ‘팝핀’과 누워서 도는 ‘비보잉(B-boying)’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그는 엇박자로 추었다. 어깨가 왼쪽으로 가는가 싶은데 팔이 오른쪽으로 뻗어 나가는, 상체는 가만히 있는데 하체는 돌아가는. 그의 몸은 따로따로 놀았다. 그 결정판이 앞으로 걸어가는 듯 보이나 뒤로 미끄러지는 ‘문 워크’였다.
그러나 그가 춤의 제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더 큰 요인은 ‘절제’다. 그는 함부로 몸을 놀리지 않았다. 움직여야 될 순간을 기다렸다 폭발하듯 한 동작에 모든 걸 뿜어 냈다. 사람들이 어떻게 팔을 돌릴지, 얼마나 빨리 스텝을 밟을지에만 촉각을 세울 때 그는 정지된 순간의 긴장감으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그는 춤의 본질이 ‘움직임’이 아닌 ‘멈춤’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이클 잭슨이 과연 노래는 잘했을까. 선뜻 동의하기에 주저하게 된다. 가창력이 있다는 건 ^성량이 풍부하고 ^고음을 치고 올라가며 ^호소력이 짙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다. 성량 대신 잘게 쪼개지는 리듬감을 포진시킨 채 고음을 질러대기보다 아예 여성의 음역을 택해 ‘안정된 고음’을 불렀으며, 거친 호소력이 아닌 섬세하고 세밀한 감성으로 무장했다. 마빈 게이의 간드러짐과 제임스 브라운의 샤우팅을 집대성한 게 그의 창법이다. 한번 돌아보자.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히트를 한 사람이 있었는가. 노래방에서 ‘빌리진’이나 ‘빗잇’을 부르는 사람이 있던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를 따라 부를 순 없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대중은 열광했다. 그러나 평자들은 인색했다. 보기에 완벽한 춤을 추고, 듣기에 너무나 좋은 노래를 부르는데 어떻게 해석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기존의 분석 틀을 뛰어넘은 그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그는 티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타고난 재능을 탐낼 뿐, 그의 노력은 몰랐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쉼 없이 노래 연습을 하면서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그는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발을 놀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게 고수다. 아마추어리즘이 횡행한 이 시대,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 말없이 보여 줬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