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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쇄신안에 알맹이가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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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쇄신특위가 내각·청와대와 당 지도부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국정 운영과 당 쇄신 방안’을 마련해 당 지도부와 청와대에 전달했다. 여권이 4·29 재·보선에서 참패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정국’에 흔들리면서 국민은 여권의 쇄신 노력을 주목해 왔다. 국정 쇄신의 요체는 대국민 소통과 여권의 화합이다. 쇄신안은 이런 문제를 고민한 흔적이 짙다. 대통령이 ‘큰 포용정치’를 하고, 담화를 국민소통형으로 바꾸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해 정언(正言) 기능을 강화하며, 야당의 지도부나 상임위원장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은 적절하다. 그러나 쇄신안엔 요체를 비켜가거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방안도 적지 않다.

그동안 사회 각계에서 진단한 정국 혼란의 병인(病因) 중 핵심으로 여권의 분열이 꼽혀왔다. 그 한복판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쇄신안은 당연히 대통령에게 이 점을 환기시키고 화합을 위한 방책도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쇄신안엔 화합 방안이 생략된 채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구성’ 건의만 담겼다. 핵심을 비켜가니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계파 갈등이 첨예한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오히려 갈등만 더 키우는 등 부작용이 적잖을 것 같다는 우려가 앞선다. 쇄신안은 또 ‘국민통합형 내각’을 제안했는데, 여권도 통합을 못하면서 국민통합이란 건 무슨 구호인지 의문이 든다. 지역과 학맥을 떠난 인사라면 ‘탕평책’이 맞는 표현이다. ‘국민통합’이라 하면 대선을 앞둔 중립내각이나 야당도 끌어들이는 연정내각을 떠올리게 된다.

특위는 총리의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아마도 노무현 정권 때의 이해찬 총리처럼 대통령을 대신해 욕을 먹을 수 있는 소신파 총리나 정치 총리를 염두에 둔 것 같다. 이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형 국정 운영 스타일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고려해봄 직하다고 본다. 다만 역할 확대를 추구한 이회창 총리가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한 사례도 있는 만큼 신중하고도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판의 후진적 양태는 후진적인 공천제도 탓이 크다. 의원들의 정치생명이 정당의 권력자에게 달려 있으니 소신과 양심은 실종되고 권력자의 눈치만 보는 것이다. 쇄신안은 선거인단이나 여론조사 경선 중 한 가지 방법을 택해 의원·기초단체장 후보자를 정하자고 제안했다. 국민공천배심원단이 공천을 인준하거나 심의하는 방안도 건의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미디어법 여론조사에서 보듯 여론조사 경선은 비현실적이고 공정하지도 않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신인의 진입을 막을 수도 있다. 당은 공천 심사를 지역별로 세분화하고, 외부 인사가 대거 참여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심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국정 쇄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쇄신안 중에서 취할 것을 취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한다. 과감한 수술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