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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정태수 총회장 4남 정한근씨 외화도피 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검찰에 적발된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의 4남 정한근 부회장의 외화도피 행각은 부도난 재벌이 회사 돈을 빼돌려 해외에 은닉하고 이 돈을 치밀하게 돈세탁 한 뒤 외국인 투자 형식으로 다시 국내에 반입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정태수 한보 총회장에 의해 러시아 이르쿠츠크지역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설립됐던 동아시아가스사는 한보 몰락 후 러시아에 있는 지분을 매각해 국내에 들여와 봤자 '그룹의 빚잔치 용도' 밖에는 안될 것이라고 판단, 애당초 이 돈을 빼돌릴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화유출을 위해 鄭부회장과 임원들이 동원한 대표적인 수법은 '이중계약' 과 '국제적인 돈세탁' 등 두 가지. 이들은 실제 매각대금이 5천7백90만달러였음에도 매각대금을 축소하기 위해 러시아측 대리인으로 나온 미국의 르네상스 캐피털사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2천5백만달러에 매각했다는 서류상의 증거를 남겼으며 이 과정에서 키프로스공화국 국적의 유령회사 (일명 페이퍼 컴퍼니) 두 곳을 동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더욱이 놀랄 일은 회사간부들이 '회사가 비행을 저지르는데 우린들 못하겠느냐' 는 생각에서 이면계약서 작성을 통해 회사 몰래 5백90만달러를 착복했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또 鄭부회장의 해외 돈세탁수법을 여태까지 밝혀진 것 중 가장 다단계며 치밀한 수법으로 평가하고 있다.

鄭부회장은 조성된 비자금 2천6백80만달러를 스위스 취리히소재 법률회사의 명의로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뱅크에 일단 보관한 뒤 히포 스위스 은행과 싱가포르 DBS은행을 거쳐 다시 말레이시아 라부안 지역의 자유무역지대 메이 뱅크로 돈을 옮겼다가 그중 2천1백만달러를 최종적으로 서울 시티은행에 송금했다.

스위스 안에서 돈 세탁을 한번 더 거친 것은 스위스에 유입된 돈이 곧바로 타국으로 나가면 국제금융시장의 추적대상이 된다는 점을 따돌리기 위한 연막작전이며 홍콩을 거치지 않은 것도 국제 돈세탁 시장 흐름의 관행을 깬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신중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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