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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노총 철수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10일 노사정위에서 철수키로 선언한 것은 금융기관과 공기업 퇴출 등 잇따른 구조조정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한 제2기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항의표시로 보인다.

즉 정부가 단 한차례 실질적 논의도 없이 노사정위를 철저히 소외시킨 채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 데 대해 양 노총 내부에서 '노사정위 무용론' 이 강력히 제기됐고 이들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지도부는 노사정위 철수라는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한달간 정부는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할 고용승계나 실업자 양산문제 등에 대해 노사정위는 물론 노동부와도 진지한 사전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 한쪽에서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다른 한쪽에선 퇴출기업 근로자 90% 이상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등 심각한 불협화음을 빚어온 게 사실이다.

노사정위 김원기 (金元基) 위원장도 이날 양대 노총 철수소식을 접하고 정부의 무대책에 대해 섭섭함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노사정위 내부문제도 양대 노총을 노사정위의 문 밖으로 내몬 주된 이유로 꼽힌다.

지난달 3일 첫 본회의를 개최한 노사정위는 이후 금융.공공부문에서 퇴출기업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운영세칙을 확정하는 데만 보름이 걸렸고 첫 실무회의를 여는 데 한달이 소요됐을 정도로 굼벵이식 행보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양대 노총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탈퇴'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철수.불참' 등 상대적으로 발언수준을 낮춘 점은 앞으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비록 내부의견은 탈퇴 강경론이 우세했으나 막상 탈퇴했을 경우 여론은 물론 국제적 비난을 한꺼번에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회견문에서 "요구사항이 수용된다면 언제라도 복귀할 용의가 있다" 고 밝힌 점도 같은 맥락이다.

두 노총 위원장은 한발짝 더 나아가 "네가지 요구사항에 대해 일부라도 '괄목할 만한' 반응이 있으면 복귀하겠다" 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도 양대 노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수렴키로 방침을 정해 파국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2일 양대 노총위원장이 공동으로 탈퇴를 경고하는 등 그동안 수차례 탈퇴를 공언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철수선언이 발표되자 부랴부랴 양보안을 내놓은 정부의 협상력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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