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개정안 기습상정 효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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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과 혼란은 1일에도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추미애(민주당) 위원장을 대신해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시켰다. 야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상정시킨 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 시행 시기를 3년 유예하는 한나라당 안을 포함해 모두 147건이었다. 오후 3시33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환노위원 15명 중 한나라당 의원 8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은 국회법에 따른 유효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국회법 50조 5항은 ‘위원장이 위원회의 개회 또는 의사 진행을 거부, 기피한 때에는 위원장이 소속하지 않은 교섭단체 소속 간사 중에서 의원 수가 많은 간사의 순으로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고 돼 있다.

1일 오후 환경노동위 한나라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이 전체회의를 열어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있다. 이날 법안 상정은 추미애 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형수 기자]

기습 상정 뒤 기자회견에서 조 의원은 “어제, 오늘 상임위를 열어 달라고 계속 요구했으나 추 위원장이 거부 의사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추미애 위원장 사퇴 촉구 결의안’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추 위원장을 상대로 실력행사를 한 셈이다.

문제는 효력이 있느냐다. 자유선진당은 “상정은 유효하다”고 봤다. 민주당·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은 “원인 무효”(우윤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라고 맞섰다. 추 위원장은 “대응할 가치도 없다”며 “위원장석 방망이를 장난감 정도로 본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상임위를 열기 위해 논의 중이었다”며 “조 간사에게 곧 회의를 열겠다는 말까지 전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기피할 의사가 없었던 만큼 조 간사가 사회권을 대리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추 위원장과 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 4명은 오후 9시20분쯤 상임위를 열어 “한나라당이 어설픈 날치기 시도를 했다”고 성토했다.

국회 의사국 측은 “현장의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해 판단하기 힘들다”며 유권해석을 유보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12월 국회 법사위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기습 상정한 일이 있다. 유·무효 공방을 벌이다가 2005년 5월 2일 여야 합의로 재상정 절차를 밟았다. 그래선지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위한 압박용”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여야=비정규직법 개정안 처리 시한을 넘긴 첫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선전과 홍보 대상은 달랐다. 한나라당은 해고 위기에 놓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겨냥해 “조속한 시일 내에 개정안을 타결 짓겠다”고 약속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참석하는 6인 대표 회담도 제안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규직 전환에 더 관심을 뒀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법 시행으로 일부 실직하는 사례가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고용 총량에선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유예 논란은 시간 낭비”라며 6인 대표 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박승희·임장혁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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