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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 미국에 한국 시조 보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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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You could live a thousand years, true,/Holy man,/Far distant, a swarm of mayflies(천 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

올해 5월 미국 하버드대 바커센터 중앙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시조 축제에서 파란 눈의 노신사가 한국의 시조시인 조오현씨의 시조 ‘아득한 성자’를 영어로 읊자 강당에 모인 사람들은 돌연 숙연해졌다. 인생의 덧없음을 망각하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내용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온 시조 애호가들은 숨을 죽이고 이를 음미했다.

하버드대의 시조 열풍은 데이비드 맥켄(64·사진)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가 이끌었다고 보스턴 글로브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맥켄 교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중·고교생 대상으로 시조 백일장을 열었다. 올해에는 450명이 응모해 실력을 뽐냈다. 지난해 참가인원(150명)의 세 배에 이른다. 보스턴 글로브는 “맥켄 교수는 미국의 중·고생들에게 시조 붐을 조성하기 위해 온라인 시조 학술지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맥켄 교수는 하버드대 아시아 시(詩) 작문 강의에서 한국의 시조와 중국의 한시,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비교해 가르쳐 왔다. 그러면서 “세 문장으로 이뤄진 한국의 시조가 일본의 하이쿠와 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43~45개의 음운을 갖는 일정한 형식 속에서도 종장을 변형시킬 수 있는 장점으로 하이쿠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학생들은 매년 ‘하이쿠의 날’을 통해 일본 문학에 관심을 갖는다”며 “미국에서 시조가 확산하면 ‘시조의 날’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청소년들이 시조를 통해 한국 문학에 친숙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맥켄 교수는 “한류(Korean Wave)가 텔레비전과 영화·음악 등을 통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며 “이제 한국의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6년부터 2년간 평화봉사단원으로 일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는 경북 안동농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때부터 한국시의 영어 번역 작업을 해온 그는 김소월·서정주·고은 등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소개했다. 이런 공로로 2006년 한글날에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에는 한국 대표시인들의 시를 번역·소개하는 문예집 『진달래꽃(Azalea)』을 창간했다.

시조 창작을 시작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그는 올해 3월 자작 시조들을 모아 영어 시조집 『도심의 절간(Urban Temple)』을 펴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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