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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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엔화가치의 폭락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의 하나. 엔화가 자꾸 떨어지면 중국 위안 (元) 화가 불안하고, 아시아는 제2의 금융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엔화를 지원하려고 미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일본 경제는 언제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 엔화는 언제 강세 (强勢) 로 돌아 아시아 금융위기 해결에 기여할 것인가.

한국을 방문중인 일본 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에게 알기 쉬운 설명을 부탁했다.

^김 = 미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는데 엔화 시세가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다나카 = 일본과 외국투자가들 사이에 엔화 자산 (資産) 의 매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주식인데 닛케이 평균주가 지수로 지금 주가가 1만5천엔대 (臺) 입니다.

투자가들은 주가가 오르기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거죠 (2일은 1만6천4백엔대로 마감) .다음은 국채 (國債) 인데 일본 국채를 살 경우 이자가 1.2%밖에 안됩니다.

누가 이렇게 낮은 이자의 국채에 투자하려고 하겠어요. 장기국채와 주식은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으니 투자가들은 엔화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입니다.

^김 = 어떻게 해야 엔화가치가 회복됩니까.

^다나카 = 먼저 일본의 경제전망이 좋아지고, 그래서 주식값이 오르고, 금융개혁으로 금융시장 사정도 바뀔 가능성이 보일 때 비로소 엔화가 오를 것입니다.

^김 = 전체적인 일본 경제의 문제군요.

^다나카 = 그렇습니다.

^김 = 일본은 전통적으로 저물가.저금리 정책을 써왔고, 미국과의 금리차가 거의 5대1이나 됩니다.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습니까.

^다나카 = 물가안정은 좋은 점이 있고 금리는 결과이기 때문에 금리를 먼저 움직이기보다 경제가 움직인 결과로 금리가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 저금리정책은 채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 =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정권의 실망스러운 경기부양책은 엔화하락에 얼마나 책임이 있습니까.

^다나카 = 책임이 큽니다.

엔화가 1달러 1백30엔대로 떨어졌을 때 취한 경기대책의 내용이 과거에 이미 실패한 적이 있는 정책과 같은 것이었어요. 거기에 대한 실망으로 엔화는 더 떨어졌어요.

^김 = 미국은 정말로 엔화하락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까.

^다나카 = 물론입니다.

엔화 하락을 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어요. 다만 시장개입을 몇번이고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은 유보하고 있어요.

^김 = 전세계 외환시장에서는 하루에 1조달러 이상이 거래됩니다.

글로벌경제 시대에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효과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다나카 = 외환거래 자체에만 개입하면 큰 효과가 없겠지요. 그러나 외환거래에 개입하면서 동시에 경제정책의 조정에도 협조한다는 의미라면 효과가 클 것입니다.

투자가들은 엔화지원에 달러를 얼마나 투입하는가보다 공동개입의 배경에 있는 새로운 정책에 관한 합의를 주목합니다.

^김 = 엔화가 어디까지 떨어지면 중국이 위안화를 평가절하할까요.

^다나카 = 1백50엔까지 떨어지면 위안화 평가절하의 명분이 됩니다.

1백60엔이 되면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으로 봅니다.

95년에 1달러 80엔이었으니까 1백60엔이면 엔화가치가 불과 3년만에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김 = 엔화가치 유지를 위한 일본의 다음 카드는 뭡니까.

^다나카 = 가교은행 (bridge bank) 을 만들어 자금경색이 일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파산은행을 매각하고 부실채권을 정리하며 소득세를 항구적으로 내리는 겁니다.

감세 (減稅) 는 내년부터 실시할 예정인데 그런 전망 자체가 지금 엔화자산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수 있어요.

^김 = 일본이 아시아 금융위기에 팔장만 끼고 있다는 비판을 어떻게 보십니까.

^다나카 = 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에 돈을 가장 많이 빌려주고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홍콩에서도 융자총액의 17%가 일본 돈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준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일본은 아시아 금융위기로 가장 큰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도네시아.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이 확정되면서 일본은 제2선 지원에도 참가했어요. 돈을 내는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이 비판받을 입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의 수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게 문제인데 그건 일본의 장기불황의 결과입니다.

^김 = 지금의 위기가 끝난 뒤 지난 30여년 동안 아시아 경제를 경이적으로 성장시키는데 공헌한 일본 모델과 그것을 모방한 아시아의 다른 모델을 대체하는 새 모델이 등장할까요.

^다나카 = 일본 스스로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수정 (修正) 일본모델' 이 일본에서 등장할 것으로 봅니다.

^김 = 그 새 모델의 핵심은.

^다나카 = 주주가 법인 (法人 = 기업) 을 지배하는 방향으로 이른바 기업통치 (corporate governance) 의 형태가 달라지는 겁니다.

주주의 목소리가 커지고, 경영진에 대한 구체적인 주문과 감시가 강화될 것 같습니다.

김영희(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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