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유 광주시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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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고재유 광주시장, 그는 누구인가.

일반의 예상을 깨고 광주시장 후보 경선과 지방선거를 거쳐 광역단체장으로 발돋움한 그는 성실성과 의지력, 끈끈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승리의 전형' 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시민들이 거물급들을 예상 후보로 떠올리고 있는 동안 그는 조용히, 그리고 철저히 바닥을 훑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사에서 검찰수사관으로, 정치학박사로, 민선1기 광주시 광산구청장으로 자신의 삶을 가꿔왔다.

광산군대촌면이장리 (현재 남구이장동)에서 1남2녀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제시대 대촌중앙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 우송 (友松) 고광옥 (高光玉) 선생이 우리 글과 역사를 가르치다 일경 (日警) 으로부터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45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여덟살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홀어머니 등 세 가족, 그리고 가난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보와 과일을 담은 좌판대를 걸어메고 이십리 길을 걸어 양동시장과 씨름판 등을 돌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50년 대성초등학교 졸업후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했으며, 독립운동기념 전국웅변대회에 전남대표로 출전해 2위에 입상했다.

10여년간 초등학교와 조대부고 교사로 재직하며 조선대 정치학과 (야간) 를 마쳤다. 67년 4월엔 검찰 공무원으로 새 출발했다.

이 기간 중에도 그는 정치학석사 (69년 조선대) , 검찰 사무관시험 전국 수석합격 (79년) , 법학박사학위 취득 (85년 조선대) 등 면학 의지를 보였다.

지난 71년 월급의 10%를 떼어 '우송장학회' 를 창립, 지금까지 1천여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민선1기땐 광산구청장에 출마, 91.4%라는 전국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

구청장 재임땐 2천6백회의 주례.조문을 하고, 민원현장을 발로 뛰어 황소.마당발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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