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홈페이지 왜 만들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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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의 통신장비업체 퀄컴사는 지난 2월 자사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국의 불황으로 휴대폰 핵심칩의 주요 고객인 삼성전자.LG정보통신으로부터의 주문이 줄어들어 올해 경영실적이 나빠질 것' 이라는 내용이었다.

퀄컴사는 이로 인해 자사의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린 것이다.

이처럼 미국 기업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는 것이 관행으로 돼있다.

주요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시켰다가 이를 믿고 이 회사 주식을 산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보게 되면 나중에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영문 사이트는 'IBM에 이어 세계 2번째로 잘 만든 홈페이지' 라는 평가를 미국 다우존스사로부터 받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기업의 홈페이지는 미국 기업에 비해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표적 기업인 A전자의 홈페이지에는 96년도 회계자료만 나와 있었고 특히 외국 투자자들이 궁금해 하는 구조조정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의 다른 자동차회사의 사이트에도 실제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주당 수익률이나 각종 자금 흐름과 관계된 구체적인 자료가 부족했다.

이에 비해 선진국 기업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신속.정확.투명 등 세가지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꾸며진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각종 매체에 게재된 새로운 기사들이 매일 올라와 있고, 필요하면 이 회사의 공식 보도자료도 내려받을 (다운로드)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 이 회사에 대한 소문이 나돌아 일반인이 확인을 요청하면 '빌 게이츠가 투자자에게 알리는 편지' 라는 코너를 통해 정확히 답변해 줌으로써 궁금증을 풀어준다.

또 이 회사의 재무코너에는 연차보고서는 기본이고 최근의 주가동향과 투자관계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특히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라도 최근 5년간 매출액이나 순익 등 원하는 사항을 입력하면 그래프로 보여준다.

홈페이지에는 오락게임도 올라있어 정보사냥을 하다가 쉬어갈 수도 있다.

각종 신제품 관련자료에는 자사제품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실려 있다.

지난 90~96년 구조조정을 했던 IBM은 당시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변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줘 투자자로부터 호평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입사원의 동정이나 직원의 건의가 홈페이지를 통해 최고 경영층에 전달되도록 돼있고, 일반인도 의견을 보낼 수 있다.

회사홍보가 생명이나 다름없는 국내 벤처기업들도 홈페이지 구축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벤처기업협회 (http://www.kova.or.kr) 는 회원사 3백78개를 거느리고 있지만 협회 영문 홈페이지에서 바로 회원사의 사이트로 연결되는 업체는 78개사에 불과하다.

기업총수들의 이미지관리에서도 해외 일류기업에 뒤진다.

경영자 이미지관리 (PI:President Identity) 는 기업 이미지를 또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에서는 중요한 홍보전략의 하나. 이때문에 IBM의 루 거스너 회장의 홈페이지는 직접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음성파일까지 게재하고 있다.

국내에선 여러 기업의 회장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었거나 추진 중이지만 외국기업에 비해 양과 질에서 많이 뒤진다는 평이다.

이민호.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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