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정치논리에 흔들리는 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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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얼마전 서울시 인수위원회의 업무청취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여당 출신 한 인수위원이 3~4년동안 중단돼 왔던 개인택시 면허를 발급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당의 민원업무를 담당하던 그는 개인택시 면허 대기자가 5천명을 넘었다며 시 간부를 몰아댔다.

고건 (高建) 시장당선자도 인수위원을 거들어 면허발급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동안 서울시는 대중교통을 우선한다며 택시 수를 7만대로 묶으면서 개인택시 면허발급을 중단해왔다.

각종 로비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유지돼온 택시정책이 민원성 정치공세에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7월1일 출범할 2기 민선자치행정에 정치적 입김이 개입될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高당선자를 후보로 냈던 국민회의에서는 '제2의 조순 (趙淳)' 을 염려하며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때문인지 인수위원들부터 국민회의 당직자로만 구성돼 '점령군' 의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심지어 시 공무원들을 출신지별로 분류한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소문으로 시청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구정 (區政)에도 정치논리가 개입될 소지가 다분하다.

공천에서 1차로 구청장을 '길들이기' 한 때문인지 구청장들 사이에선 정당을 잘 챙겨야겠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자치행정이 정치논리에 휘말릴 경우 민원을 앞세운 국회의원들의 공세에 정책현안들이 객관성이나 합목적성을 상실한 채 휘둘리기 십상이다.

이럴 때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정책이나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주민편에서 일하겠다는 자치정신이 실종될 수도 있다.

단체장 개인이 정치공세를 견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결정 때 주민참여와 정보공개를 필수화해 불합리한 외부 입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길밖에 없다.

단체장들이 명심할 것은 후보공천은 소속정당이 해줬지만 단체장으로 선출한 것은 지역주민이란 사실이다.

소신과 항심 (恒心) 을 가진 단체장들로 명실공히 민선시대를 여는 2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경란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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