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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터뷰] 중앙일보에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 연재 시작하는 이원복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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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다음달 6일부터 본지에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을 연재하는 이원복(63) 덕성여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2004년 미국편을 마지막으로 ‘먼나라 이웃나라’는 더 이상 그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동·서양 9개 나라의 역사를 12권으로 펴낸 그의 책들은 1400만 권이나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다. 하지만 이 교수에겐 끝내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중국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제국을 어찌 그릴까.” 그런 생각에 망설이고 주저하던 그를 중앙일보가 끌어냈다. 그는 “신문사에 연재를 시작하는 건 데드라인에 몸을 내맡긴 것이니 도망갈 곳도 없다. 최선을 다해서 중국의 역사를 조명해 보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5일 오후 이 교수의 강남 작업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이원복 교수가 인민복을 입은 남자와 중국 전통 치파오 차림의 여자를 그린 유리판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렸지만, 국가 이미지가 스테레오 타입화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소년한국일보 연재를 시작했던 1981년 과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셨습니까.

“크게 변했죠. 제가 1975년에 독일에 유학을 갔어요. 당시엔 우리도 빨리 선진국들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요즘은 아시아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어요. 그동안에는 서구적 가치가 세계의 기준이었잖아요. 하지만 세계사의 물꼬가 바뀌고 있어요. ”

-민족주의자는 아니시죠.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폐쇄적 민족주의예요. 저는 ‘세계시민’의 기준을 생각해요. 요즘 독일 사람들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I am European(유럽사람)’ 이라고 해요. ‘아임 저먼’이라고 별로 안해요. 그런데 고향의 가치를 버린 게 아니거든요. 독일인의 습성, 가치를 지키면서 그래요. ”

-다른 나라의 역사와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연구하는 게 이 교수님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 남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반면교사예요.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수 없으니 다른 나라들 보면서 뭐가 상식이고 보편인지를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비상식적인 게 많아요. 국회도 그렇고. 그런데 요즘은 ‘글로벌 스탠더드’ 얘기를 하면 수구꼴통이라고 하니….”

- 진보 진영에선 교수님을 보수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진보요? 누가 진보죠? 아마 좌파를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런데 신경 안써요. 자기와 의견과 다르면 매도하는 성향이 너무 강하니까. 저는 제 성향이 자유주의자(리버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좌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짜 좌파라고 안봅니다.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從北)좌파죠. 마르크스, 레닌에서 비롯된 유럽 좌파들은 민족주의를 배척하고, 인권을 내세우죠. 한데 한국 좌파는 민족끼리를 강조하는데, 엉터리 아닙니까.”

-우파는 어떻게 보세요.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죠. 막혀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남의 얘기 안 들으려하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고…군복 입고 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때려부수는 것 보세요.”

- 리버럴이라고 하셨는데 70년대 독일 유학 의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 독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고향이에요. 독일 사람에겐 사회는 공평해야 한다는 피가 흐르고 있어요. 유학생치고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 없어요. 저도 당연히 ‘평등’과 ‘사회’를 중요하게 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좌파는 아닙니다. 지금은 거의 주체사상파 내지는 반미 극단세력을 좌파라고 부르죠. 그 사람들 제가 볼 땐 진보가 아니라 수구 좌파거든요.”

-독일은 중도세력이 강합니까.

“그래요.우리와 달리 거긴 허리가 강해요. 한데 우리는 분단 때문에 극좌나 극우가 아니면 목소리를 못내. 중간에 있는 리버럴한 자유주의자들이 튼튼한 허리인데 그 사람들이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로 몰리거든요. 양쪽만 큰소리를 내고 중간은 침묵하는데, 한국사회의 모순과 불안이 거기서 나와요.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어요. 자기와 다른 의견을 비민주적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어요.”

-한국사회가 거꾸로 간다는 겁니까.

“아니, 발전은 하고 있죠. IT산업은 독일인들이 와서 깜짝 놀라고 간다고요. 한데 의식구조는 아니야. 우리가 너무 압축성장을 해서 물질적인 것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건 아직 못따라간 부분이 많아요. 시위문화, 정치, 이데올로기 분야 등이 그래요. 그러나 접근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낙관하시네요.

“진보하기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겁니다. 아무튼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권리와 책임이 따르는데 우리는 권리 분야만 강조하지 책임은 아직 후진국인 셈입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시간이 필요하죠. 한발짝씩 하는 것이고. 어찌 보면 우린 지금 겪을 걸 겪는 겁니다. 공짜 점심(free lunch) 없다는데 공짜 민주주의도 없죠.”

-유엔 가입 299개국 중 식민지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었던 나라 가 거의 없으니 일본의 식민지였던 걸 부끄럽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역사를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자는 거죠. 일본이 안먹힌 것은 막부시대부터 세계로 향한 문을 하나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가사키의 인공섬에다 네덜란드 장사꾼들 머무르게 하고 네덜란드 선장들을 1년에 한번씩 불러다 유럽정세를 듣고 스스로 개혁을 했으니 안 당한 거죠. 당시 조선은 전 세계와 담 쌓고 중국과 일본만 보고 있었는데, 거기다 대고 세계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숙명적인 부분도 있다는 거군요.

“지정학적으로도 그렇죠. 또 우리가 가해자였던 적도 있어요. 우린 여몽연합군에 끼어들어 갔잖아요. 월남전에도 갔고.”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하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일본인들에게 사과가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해요. 사무라이 문화에서 사과를 한다는 건 모든 책임을 지고 결말을 짓겠다는 거죠. 그래서 명치유신 이전에는 사과한 뒤 배를 가르고 죽었어요. 일본이 사과라는 표현 대신 ‘통석의 염’ 어쩌구 하면서 에둘러 가는데는 그런 문화적 배경도 있어요.”

-우리로선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지금 이 방이 더우면 저한테 좀 덥다고 하시겠죠. 일본에선 그렇게 직접 말하면 안 돼요. 만약 에어컨을 켜고 싶으면 지구온난화 얘기를 해야 돼. 그러면 상대방이 ‘이 양반이 덥구나’ 눈치를 채고 ‘잠깐 에어컨을 켜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거죠. 체면이 중요하니까. 화(和)라는 것은 그런 것이에요.”

- ‘중국편’은 건국신화부터 시작하시나요.

“그랬다간 죽을 때까지 중국편만 하다가 끝납니다. 제가 다루려는 것은 청나라가 몰락한 후에 다시 떠오르는 중국, 다시 말해 중국의 근현대사죠. 청나라가 왜 몰락하는지부터 다뤄요. 1600년대 말부터 1800년까지 청나라는 태평성대였어요. 130년간 황제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뿐이었죠. 한데 달이 차면 기울 듯 그게 몰락의 시작이 됩니다.”

-중국이 어떤 나라라고 보십니까.

“동방의 뿌리가 아닌가 싶어요. 중국은 종합적인 개념이에요. 황허 중심의 한족 국가를 중국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가진 문화, 한자, 종교 등이 동아시아 멘털 구조의 기본이죠. 아마도 중국을 그리면서 아시아적인 가치의 재발견 부분에 무게를 싣게 될 것 같아요. ”

-중국이 앞으로 20~30년 뒤에는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 된다는 관측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봐요. 미국과 비교할 때 중국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자 성장동력이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이에요. 중국인이라는 문화적 공유감이죠. 한국민도 아이덴티티가 뛰어난 국민 중 하나입니다. 일본은 처지죠. 일본은 외국것을 모방하는 문화였죠. 일본경제가 정체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고 봐요. 창의력의 시대에 문화적 정체성 부분에서 걸려있는 거죠.”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 저는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진 게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포기합니까. 북한이란 나라는 세계사, 문명사, 인류사적으로 봤을 때 가장 비정상적인 나라예요. 공산주의 세습정권은 서구의 이데올로기와 아시아의 왕정이 합쳐진 이상한 거죠. 비상식적은 건 언제든 무너지게 돼있어요. 그만큼 버틴 것도 기적입니다. 북한 정권이 막바지에 왔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만화가가 있습니까.

“허영만씨를 좋아해요. 만화 잘 그리시죠. 그분이 그린 타짜, 비트 등 다 좋아해요. 그리고 허씨의 스토리 작가인 김세영씨도 참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대담=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정리=이영희 기자

◆‘먼 나라 이웃나라’=‘온 국민의 역사교과서’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세대를 막론하고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역사만화. 1981년부터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된 원고를 모아 87년 ‘먼나라 이웃나라 1권-네덜란드편’이 나왔으며 이어 프랑스·독일·영국·스위스·이탈리아 등 유럽편 6권, 일본편 2권, 한국편 1권, 미국편 3권에 이르기까지 총 12권이 출간됐다. 국내 인기에 힘입어 외국으로 수출, 영어·일본어·중국어판으로도 발행됐다.



만나 보니

인터뷰를 하다 보면 상대방으로부터 닮거나 배우고 싶은 게 하나씩은 꼭 있게 마련이다. 건강이 됐든, 왕성한 활동력이든, 날카로운 통찰력이든.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의 경우 어린애처럼 해맑은 그의 웃음이었다. “나도 60대가 되어서 저렇게 웃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하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째 그리 젊어보이냐고 묻자 그는 “7남매의 막내인데 감히 늙을수 있느냐”며 깔깔 웃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독일 유학 중이던 이 교수가 잡지에 연재한 ‘시관이와 병호’ 같은 만화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은 내 아이들이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며 크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만화가의 만화를 통해 한 세대를 뛰어넘고 있는 셈이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대한민국에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 교수는 그걸 생각하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초대형 베스트 셀러지만 약점이 있었다. 미국·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 서구 주요 국가들을 대부분 섭렵했고 동양에서 한국과 일본을 훑었지만 정작 중국이 빠진 것이다.

이 교수는 “사실은 중국이 워낙 방대해 겁이 나서 그랬다”면서 “신문사 연재에는 마감(데드라인)이 있으니 죽으나 사나 밀고 나갈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수십 년간 잡지와 신문에 연재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원고가 늦은 적이 없는 성실한 작가다. 그는 “스트레스 안 받는 게 내가 젊게 사는 비결인데 원고 독촉 때문에 스트레스 생길까봐 미리미리 보낸다”며 또 웃었다. 와인책을 써내기도 한 그는 누구나와 즐겁게 술마시는 게 또 다른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30년전 유학을 가 서구의 모습이 그저 경이롭기만 했던 이 교수는 요즘 동양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은 그래서 그의 한평생 지식편력의 집대성이 될 것이다.

김종혁 문화스포츠 에디터,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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