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은행 비상접수 '물밑작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부실은행 정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금융감독위원회와 한국은행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감위는 27일 오전 은행경영평가위원회의 부실은행 평가결과를 제출받아 이헌재 (李憲宰) 위원장이 이날로 예정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 과정에서 정리대상 은행 및 발표일정에 대한 재가를 얻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리대상 은행은 적어도 5개는 될 것으로 관측된다.

발표시점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토요일로 예상됐으나 경평위 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다음주중 평일을 골라 은행영업시간이 끝난 오후 늦게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은행감독원은 정리될 은행별로 담당검사역을 지정해 ^파견 즉시 본점 영업부 및 각 지점 금고열쇠를 확보하고^본점 전산망의 암호를 파악해 자료유출을 막으며^입출금과 관련된 모든 장부.결제서류 및 결제도장을 확보하고^정리대상 은행의 대리급 이상 간부직원의 업무를 해제하는 등 비상 접수요령을 시달했다.

은감원은 또 예금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각 지방경찰청에 발표 전날 밤부터 은행 본점 및 지점에 전투경찰병력을 동원해 야간경비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공과금을 전담 수령하거나 지하철승차권.버스카드의 결제를 맡고 있는 은행의 업무가 정지될 경우 행정업무가 마비되지 않도록 각 지자체에 대비책을 강구케 하기로 했다.

또 예금주들이 정리대상 은행의 현금카드로 타은행의 자동입출금기 (ATM) 나 현금출금기 (CD) 를 이용해 업무정지기간중 돈을 찾는 것을 막기 위해 발표 즉시 이들 은행 현금카드의 효력을 중지시키는 방안을 금융결제원과 협의키로 했다.

은감원은 또 부실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하는 우량은행 주주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부채의 일부는 성업공사가 즉시 매입해 주고 나머지는 값을 대폭 할인해 넘기기로 했다.

그래도 인수자의 국제결제은행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면 그만큼을 정부출자나 후순위채 매입을 통해 보완해 주고 BIS비율의 일시하락에 대한 제재는 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부실은행의 대량 예금인출사태 (뱅크런)에 대비한 비상대책을 마련중이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은행의 결제자금 부족사태는 없다" 고 단언하면서도 부실은행의 자금수급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는 한편 일부 우량은행의 자금지원 여력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 자금부족 사태 = 예금주에게 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당좌거래 중단으로 기업 부도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극심한 자금난에 몰린 부실은행이 다른 은행으로 가야 할 돈을 일단 당겨 쓸 경우 다른 금융기관이 예기치 않은 손해를 보는 등 결제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 사전대비가 필요하다.

◇ 어떤 대책이 있나 = 부실은행이라도 유동성을 확보해 뒀으면 큰 문제가 없다.

현금이 아니더라도 유가증권을 팔아 자금수요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1차적으로 부실은행이 보유한 환매조건부채권 (RP) 이나 통안증권을 되사 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유가증권도 부족한 부실은행에 대해서는 우량은행들이 부실은행의 양도성예금증서 (CD) 를 인수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 적기 (適期) 대응조치 = 재정경제부는 금융기관 업무정지가 발생할 경우 연쇄부도를 방지하기 위해 당좌거래 업무.소액예금 지급업무.단기무역 금융업무를 우선 정상화하고 기업의 예금이 동결된 경우 예금을 담보로 타은행에서 대출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남윤호.박장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