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잠수정 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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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은 역시 변하지 않고 있다.

이번 잠수정 침투사건은 96년 잠수함 침투사건의 복사판이다.

96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을 돕기 위해 우리는 쌀을 보냈고 그들은 잠수함을 침투시켰다.

새 정부가 햇볕정책을 선언하고 소를 보낸다, 금강산을 개발한다는 등 협력의 물꼬를 트는 순간에 그들은 잠수정을 침투시켰다.

북한은 2년전에도 억지를 쓰다 결국은 사과성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으나 결국 그것도 말뿐임이 이번에 재확인됐다.

인양한 잠수정 내부의 조사결과 북한의 주장대로 훈련중 표류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게 목적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승조원과 공작원의 행태 역시 지난번과 똑같다.

잠수함사건때 11명의 승무원이 집단자살을 해 우리를 경악케 했는데 이번 역시 집단자살극을 재연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어느 정도인가 섬뜩하다.

무력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꾸준히 잠수함을 보내고, 대남공작원을 보내 우리 정보를 캐 가고 내부분열을 획책하는 등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역시 96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택시운전사가 발견한 잠수함에 대응을 잘못해 결국은 몇 개 사단을 풀어 놓고 몇 개월간의 작전을 벌였다.

이번에는 꽁치잡이어선이 발견한 잠수정을 연안까지 끌고 오는 단순작전도 수행하지 못해 침몰시키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 해군사에 남을 치욕거리인데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96년 잠수함 침투사건후에 해상 레이더설비를 보강한다, 철조망을 재정비한다, 대잠 (對潛) 초계능력을 높인다는 등 말로는 번지르르한 대책을 발표했는데 똑같은 사건이 터졌다.

이번 사건으로 보아 북한은 상시로 우리 연안을 제 집 드나들 듯하고 있었다는 것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96년사건때 그렇게 반성했고 또 전력까지 보강한다고 했으니 최소한 단 한건의 잠수함 활동이라도 탐지했어야 하지 않는가.

꽁치잡이어선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평성대로 별일 없다는 듯이 보냈지 않았겠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군을 믿어 달라고만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이번 국방부 발표내용도 미흡하다.

예인과정에서 인양까지 의문투성이다.

왜 예인항구를 중도에 변경했으며, 겨우 수십㎞의 뱃길인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됐는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 가는 일이 많다.

그런 일이 해명이 안되니 '햇볕정책' 때문에 일부러 그랬다는 허무맹랑한 소문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또 국방부 발표에 최소한 대 (對) 국민사과가 있어야 했다.

그런 무능력을 보였으면 당연히 반성이 나와야 하는데 그저 변명에만 급급하니 군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 응분의 처리를 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대북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북한의 무력야욕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게 확인됐는데 정부는 햇볕정책에 변함이 없다고 한다.

새 정부는 무력도발은 도발대로 강하게 대응하면서 남북협력은 증진시키겠다는 소위 3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분리정책을 일단 수긍한다.

그러나 이번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사건의 본질규명에서부터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옳지만 처음부터 침투가 분명하다는 것이 군의 결론이었는데 정부.여당측에서 오히려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마치 침투나 도발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나간 것이 옳은 태도였는가.

분노하고 항의해야 할 쪽에서 '잠수정 출현' 이니 어쩌니 한 것은 석연치 않았다. 정부는 이 기회에 도발억제와 협력증진이 어떻게 조화돼 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

우리는 이번에도 북한에 해명과 재발방지 등을 요구했다.

그들이 이번 역시 말뿐으로 끝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침투조가 이미 상륙했는지도 잘 판단해 후속작전에도 차질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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