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소년에 눈감은 사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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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35면

미국 LA타임스는 최근 노숙소녀 카디자 윌리엄스(18)양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카디자는 엄마·여동생과 함께 노숙인 숙소를 전전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하버드대학 전액 장학생이 됐다.

우리나라 경찰청 통계자료를 보면 2004년 청소년 가출 발생 건수는 약 1만7000건이다. 가출청소년의 나이는 평균 15세로, 중학생이 가장 많지만 점점 초등학생으로 내려가는 추세다. 가출 이유는 많지만 대부분 가정불화와 부모와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부모의 가출·폭력·무관심 등은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다. 가정불화는 자신감 상실, 소외감, 우울증, 일탈행위로 이어진다.

자아에 눈뜨고 정체성을 찾을 중학생 시절에 오히려 자긍심을 상실하게 된다. 사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할 가정은 억압과 공포의 공간이 돼 생존을 위한 도피 충동과 새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가출을 시도한다.

가정에 문제가 있더라도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아이들은 대개 자아를 형성하며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러나 선생님에게도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학교에서도 탈락한다.

그들은 가출로부터 자유와 해방감을 얻지만 곧 생존 문제에 직면한다. PC방 등을 전전하다 노래방·식당·유흥업소에서 돈을 벌기도 하고 또래의 비행 청소년들과 절도를 하기도 한다. 집단행동을 하면 범죄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해지고 점점 더 조직적인 범행까지 저지른다. 범죄의 성공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받지 못하던 타인의 인정을 또래 집단에서 받는다. 영웅심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 경찰서에 갈 때에는 겁이 나지만, 곧 더 이상 무서운 곳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법처리 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범행을 생존 논리로 정당화했었지만, 정의와 양심에 따라 논리적으로 따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거대한 사회체제의 힘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압도된다.

이런 과정과 카디자의 삶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 그의 가정에는 신뢰와 사랑이 있었다. 엄마는 경제적으로 무능했지만 딸에게 격려와 사랑을 주었다. “넌 재능이 있어. 너는 오프라 윈프리야!”라고 말하며 딸의 용기를 끊임없이 북돋아 주었다.

둘째,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캘리포니아 주 전체에서 상위 1% 안에 들자 선생님은 그를 영재 프로그램에 넣어줬다.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셋째,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9세부터 대학 진학의 목표를 세우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쁜 환경 속에서도 술·담배·마약에 빠지지 않았다.

넷째, 제때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회복지단체가 있었고 독지가의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사회가 각 가정사에 개입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한국에는 약 30개의 청소년 쉼터가 있다. 국비·지방비와 종교재단 지원 등으로 운영된다. 쉼터 중 절반가량은 예산이 1억원에도 못 미친다. 전문상담원도 부족해 자원봉사자에 의지할뿐더러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50% 정도를 행정업무에 소모한다. 우리나라 전체 가출 청소년 수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쉼터에서 보호를 받는 청소년은 7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청소년들은 사회의 약자다. 사회 각 계층은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이들은 목소리를 낼 줄도 모른다. 이들을 선도하지 않으면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서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으로 남는다. 경제 위기 속에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은 더욱 고통을 받는다. 이들을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길러내기 위해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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