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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데 없는 범죄피해자들 안식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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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두정동 현대차사거리에 있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피해자 신청을 받아 경제적 도움은 물론 의료·정신·법률적 지원에 나선다. 한 신청자(右)가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몇 년 전 자영업을 하던 박모(45·여·천안시 봉명동)씨는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집안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힘들어하던 박씨에게 주변에서 “범죄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에게 지원을 해 주는 기관이 있다”고 조언을 해줬다. 박씨는 “나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며 반신반의하다 천안에 있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았다. 센터는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박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상담을 통해 국가보조금 신청을 도왔다. 박씨는 센터를 통해 구조금을 받고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구조금은 범죄피해로 남편을 잃은 박씨 가족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박씨처럼 범죄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위해 국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천안·아산에도 이들을 돕기 위해 2006년 7월 ‘천안아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설립돼 운영 중이다. 누구나 상담이 가능하고 일정 조건만 갖춰지면 지원도 해준다.

◆“몰라서 지원 못 받는 사람도 많아”=“범죄피해자가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도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있는지도 몰라 도움을 받지 못한 피해자가 대부분이죠.” 그 동안 법원이나 검찰 등은 범죄피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적극적인 반면 피해자의 권익에는 무관심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범죄피해자의 경우 눈에 잘 띄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위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또 성폭력피해자의 경우 모욕감과 보복 때문에 숨기는 데 급했다.

직·간접적인 피해로부터 피해자와 유족, 친족 등의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센터는 범죄로부터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로부터 보상조차 못 받은 피해자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 정신적인 피해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피해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병원을 연계해 주기도 한다. 법을 몰라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법률 자문을 통한 실질적인 도움도 준다.

센터는 2007년부터 도입된 형사조정을 통해 범죄 축소와 사회질서 확립에도 나서고 있다. 형사조정은 검찰에 고소된 사건이나 경찰에 인지된 사건 중 죄질이 경미하거나 처벌보다 당사자간의 화해를 통한 합의가 필요한 경우 조정위원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다. 센터에서는 10개조로 나눠 한 달에 두 번씩 조정을 통한 중재를 하고 있다. 2008년 6월부터는 즉일조정을 통해 판결문과 같은 효력의 합의문을 작성하기 때문에 체불임금 사건이나 사기사건의 당사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사소한 피해도 지원받을 수 있어=천안아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사례는 다양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박씨처럼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범죄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센터는 최근 천안시 구성동에서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칼에 찔려 숨진 이모(14)군의 장례비용과 부검비용을 지원했다. 이후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했고 가족을 대신해 대전지방경찰청에 유족구조금신청을 해줬다.

천안시 입장면에 사는 지적장애 1급인 이모(14)양. 이 양은 얼마 전 같은 동네 40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이 양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센터는 상담과 함께 산부인과진료를 병행했다. 도움을 주던 과정에서 지적장애인 이 양의 엄마를 알게 돼 ‘장애(3급) 판정’을 받도록 지원했다. 모녀는 서류를 제출해 생계비 보조금을 받았고 천안시의 협조를 받아 집수리를 해줬다. 성폭력 피해의 경우 특히 피해자 보호를 중시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는 장기간의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센터는 매달 소정의 치료비를 지원해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천안에는 최근 외국인 거주자가 1만 명을 넘었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외국인피해자들의 지원요청도 늘고 있다. 그 중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피해자 여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 여성으로 한국에 시집온 후인마이씨. 그는 한국생활 중 2007년에 남편에게 살해를 당했다. 센터는 후인마이씨 유가족에서 위로금 500만원을 지급했다. 또 한국으로 시집온 몽골여성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어린 딸과 방황하며 거리를 전전했다. 갈 곳 없이 딸을 책임져야 하는 이 몽골여성에게는 매달 3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위로금 지원했다. 센터는 2007년 한 해 동안 73건의 피해자들에게 5500만원, 2008년에는 39건의 피해자들에게 7300만원을 지원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김지만(51) 실장은 “피해자들을 모두 돕기 위해선 기업이나 기관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범죄피해를 입고 고통 받는 피해자들을 지원해 그들이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상담 천안아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041)556-9494.

백경미 인턴기자

지원센터 곽만근·조중혁 초대 지회장 “정상적 생활이 가능할 때까지 지원”

천안아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초대 지회장으로 곽만근(62), 조중혁(61)씨가 위촉됐다. 7월2일 천안과 아산지회를 만들고 대대적인 조직도 구성할 예정이다. 각각 전문의로 구성된 의료지원과 26명의 상담위원을 위촉, 활동하게 된다.

-지회장 위촉 전 어떤 일을 했나.

“2005년까지 39년간 공직자였다. 2007년 말 천안시 자치행정국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천안 민자역사 대표이사직을 역임하다. 센터 천안지회장을 맡게 됐다. 조중혁 아산지회장도 2007년 말 아산시 산업경제 국장으로 퇴임했다.”(곽만근)

-어떻게 지회장을 맡게 됐나.

“주변의 추천으로 어려운 자리를 맡게 됐다. 천안·아산에서 공직생활을 했기 때문에 행정경험을 살릴 수 있고 지역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봉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나 보다.”(조중혁)

-어떤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돕는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꺼려하고 본인이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는 감추려고 한다. 비밀 보장을 해주고 피해자 편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곽만근)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역할은.

“범죄피해를 입은 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몰라서 도움을 못 받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우리는 경제적인 도움부터 의료지원·법률 상담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피해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까지 모든 도움을 준다고 보면 된다.”(조중혁)

-앞으로의 홍보 계획은.

“각 읍·면·동 이장부터 통장·부녀회장 등을 240여 명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지역 일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알고 있고 연결해 줄 것이다.”(조중혁)

-앞으로 활동 계획은.

“외국인 근로자와 희귀질병 환자 등 사회 소외계층까지 지원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많은 피해자들이 센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봉사단체 등과 협력해 활동하겠다.”(곽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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