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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경제대란 몇년 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해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가시화된 동남아 경제위기는 1년이 다된 지금까지 조금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몇 주일간의 일본 엔화 약세와 더불어 아시아 각국의 주가 폭락과 환율 불안정은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제2파 (波) 로 더욱 심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70년대의 국제 석유파동과 80년대의 중남미 외채위기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경제는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어느 지역보다 괄목할 만한 외형적 성장을 누렸다.

그 기간에 개인당 소득이 한국은 열배, 태국은 다섯배, 말레이시아는 네배로 성장했고, 21세기는 가위 태평양시대가 될 것으로 모두들 기대했다.

이러한 급성장경제에 현혹돼 90~96년 사이에 해외자본은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약 4천억달러가 유입돼 이곳에 투자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는 환란 (換亂) 으로 시작해 지금은 더 구조적인 경제공황으로 변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 (IMF) 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98년 경제성장률을 태국은 3.5%, 인도네시아는 3%, 한국은 2.5%로 예측했다가 최근에는 각각 - 5.5%, -10%, -1%로 수정했다.

그러나 지난주 재정경제부는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을 - 4%로 재수정했으며 워싱턴의 국제경제연구소 (IIE) 등 해외전문가들은 - 5% 이상으로 내다 보고 있는 형편이다.

위의 경제성장 예측은 최근 일본 엔화의 갑작스런 약세와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을 배제한 계산이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하락률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 국내총생산 (GDP) 의 60%를 차지하는 일본의 엔화가 1% 평가절하될 때마다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의 GDP는 0.1%씩 하락하는 것으로 계산되는데, 국제 수출시장에서 경쟁관계가 밀접한 한국경제에는 이보다 더욱 큰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현 경제위기가 몇 년간 계속될 것인가는 이웃 일본의 경제 형편을 보면 많은 참고가 된다.

정부주도의 경제운용, 수출을 중시하는 신중상주의 (重商主義) 적 대외경제정책, 과도한 정부규제, 취약한 금융분야 등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정책구조는 아시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유사한 점이 많다.

80년대까지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9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줄곧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서방 전문가들은 일본경제의 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 (Lost Decade)' 으로 부르고 있다.

80년대말에 비해 일본 주가는 60%이상 하락해 있고 은행들의 불량여신은 전체 자산의 2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년여 동안 일본정부는 무려 5천억달러 이상의 경기부양책을 썼으나 금년 1분기 GDP는 연 5.3% 정도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경제의 장기적 침체현상은 대장성 관료들을 포함한 정부당국자들의 지지부진하고 우유부단한 경제개혁, 특히 금융개혁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은 80년대에 주택융자회사인 S&L (Saving and Loan association) 들이 부실해지자 이를 은폐하거나 해결을 지연시키지 않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과감한 통.폐합과 자산 매각 등의 정공법 (正攻法) 으로 대처했다.그 결과 원래 5천억달러의 정부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S&L 청산비용이 결국 5분의 1도 안되는 9백50억 달러에 그쳤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정부는 취약한 금융계의 수술을 지난 8년간 미뤄 옴으로써 장기간의 경기침체를 자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식의 금융개혁을 따른다면 현재의 경제대란은 그만큼 오래 갈 것이다.

금융계의 구조조정은 속전속결로 처리할 경우 성공률도 높고 국민이 결국 부담해야 할 비용도 절감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금융개혁도 철저하고 빠를수록 좋으며, 또한 이 길만이 오늘의 IMF위기를 단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는 정도 (正道) 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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