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밝혀낸 공기업 '흥청망청'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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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의 공기업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밑빠진 독' 이었다. 19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이런 실태가 실감나게 드러났다.

감사 결과 지난 5년간 공기업의 수익성은 떨어지고 빚은 2.4배나 늘어났지만 거꾸로 임직원 임금은 정부 가이드라인보다 최고 3.5배까지 뛰었다.

이 기간중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45%인데 임금상승률은 68.9%.

회사의 경영사정이나 노동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직원들은 편법 임금인상 등으로 국민의 혈세를 자신들의 주머니에 챙겨넣기에만 몰두했다는 얘기다.

생산성 증가율을 초과, 과다인상된 인건비는 1인당 평균 5백77만원, 공기업 전체로는 1조5천2백억원이다.

같은 기간 민간기업의 1인당 인건비는 1천8백여만원에서 2천7백만여원으로 44.5% 는 반면 공기업은 2천4백여만원에서 4천1백여만원으로 68.9% 인상됐다.

◇지나친 임금인상 = 93~97년 40개 모회사에서만 정부가 권고한 임금인상률보다 초과 인상한 인건비는 4조9천9백억원. 그러나 이 기간에 전체 임금중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떨어졌다.

즉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 등을 신설하거나 증액해 편법적으로 임금을 인상해온 것이다.

대한주택공사의 자회사인 한양은 95년 이후 1백여건의 계약금을 통해 얻은 이익금 9백28억원을 빚을 갚는데 쓰지 않고 임금을 올리는데 썼다.

상여금은 두배로 올리고 교통비는 1인당 14만원씩 인상했다.

한국토지공사의 20년 근속자가 받은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보다 1억6천여만원이 많은 2억4천8백여만원이다.

40개 모기업에서 퇴직금을 주느라 이익에서 빼내는 충당금이 97년 11조7천2백억원으로 당연히 재정악화의 원인이 됐다.

임금만이 아니다. 공무원은 무이자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아야 하는 학자금을 한국담배인삼공사 등 37개 기관은 지난 5년간 임직원 자녀에게 무상으로 3천4백45억원을 지원했다.

◇과다한 편법 임금지급 = 감사받은 40개 모기업 모두 체력단련.결혼기념을 명분으로 휴가를 늘렸다.

이로 인해 휴가일수가 근로기준법상의 규정보다 최고 11일까지 많아진데다 연월차수당까지 근로기준법의 지급기준을 넘어선 1.8배로 줘왔다.

산업은행의 1급 45호봉인 임원이 지난해 휴가수당.연월차수당으로 받은 금액은 1천6백여만원이나 됐다.

◇경영진의 무책임 = 포철 등 15개 기관의 임원 월급 인상률은 직원에 대한 인상률보다 최고 5.5배까지 높다. 국정교과서가 2.1배, 국민은행이 1.8배, 한국전력이 1.7배다.

포철도 1년에 많아야 17일밖에 사용하지 않는 회장의 지방사택 관리비로 1억원을 썼다.

외환은행 등 12개 기관은 지급대상도 아닌 간부 40명에게 전용차량과 기사를 배정해주고 구입한 지 3년도 안된 사장 전용 차량을 새 차로 바꿔왔다.

◇불필요한 자리 만들기 = 한전은 지사의 전력소 관리와 영업업무를 분리해 전력관리처는 9개, 직할지점은 6개를 따로 설치했다. 외환은행은 은행권의 부실로 예금주 보호까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던 올해초 조직개편을 하면서 5개 지역본부의 기능을 본점으로 이관했다.

그런데도 이들 지역본부를 없애지 않고 본부장을 두고 있다. 또 7개 해외점포가 경영부실로 회생이 불가능한데도 그대로 두고 1천5백만달러를 낭비했다.

포철 등 16개 기관은 93년보다 전체 인력이 8천8백여명 줄었는데 거꾸로 3급 이상 상위직은 1천5백여명이 늘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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