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 국회에 돗자리가 깔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3월 2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 합의문은 지금 휴지가 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 돗자리를 깔았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미디어산업발전법’이라고 명명한 뒤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이념과 지지 기반이 다른 정당들이 협상을 통해 사회의 공동 이익을 지켜 나가는 게 의회 민주주의다. 한국 정치에선 지금 그 협상의 결과물인 합의조차 무시당하고 있다.

한나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유선진당과 타협안을 검토하는 한편 민주당과의 협상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강성으로 알려진 안상수 원내대표와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가 강온 양면 역할을 분담하는 팀워크 플레이도 벌이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24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자유선진당이 미디어산업 발전을 위해서 대안을 제시했다”며 “선진당의 절충안과 미디어발전위원회의 안을 참고해 좋은 안을 다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법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법이고, 과거 정권이 장악한 방송을 풀어주는 법”이라며 “앞으로 미디어법은 ‘미디어산업발전법’으로 명칭을 통일하겠다”고 말했다.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디어산업발전법도 문방위에서 충분히 협상이 가능하다”면서 “상임위에서 토론을 거쳐 민주당이 우려하는 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방송을 장악한다고 우려한다면 그런 요소들 다 빼겠다”고까지 했다.

민주당과의 대화 채널도 닫지 않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마치 벽과 대화하는 느낌’이라며 협상 무산을 선언했지만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의 협상은 계속됐다.

김 수석부대표는 전날에 이어 민주당 우윤근 수석부대표와 접촉해 “26일 열리는 국회에 등원하면 민주당 측 요구를 모두 논의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우 수석과 좋은 얘기가 오가고 있다”며 “시급한 비정규직법을 우선 처리한 뒤 미디어법도 민주당 측이 대안을 제시하면 협의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은 29일 문방위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25일 미디어위 최종 보고서를 접수한 뒤 다음 주부터는 선진당 안을 포함해 본격적인 미디어산업발전법안 심의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문방위의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도 “(법안의) 한 글자도 못 바꾼다는 입장이 아니라 야당의 대안을 놓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라며 “미디어위 안과 선진당 안을 검토해서 의미 있는 결론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효식 기자



민주당


“야당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거대 여당의 횡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 명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 돗자리를 깔고 하룻밤을 지새운 다음 날인 24일 오전 최고위원회를 주재한 정세균 대표의 첫마디다.

민주당은 왜 다시 벼랑 끝에 서게 됐을까. 근본적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서 찾는 건 정 대표만이 아니다. 당내 대표적인 온건파조차 “쟁점 법안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보도 없이 무조건 국회에 들어오기만 하라는 건 무책임한 것”(강봉균 의원)이란 반응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 일정도 안 잡힌 시점에서 본회의장 앞에 진을 친 것은 여론전에서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단독 국회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59.9%”라며 자체 조사 결과를 강조했다. 정치컨설턴트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반사이익으로 얻은 전통적 지지층의 관심을 묶어 두는 길은 격한 대치뿐이라는 게 강경파의 생각”이라고 봤다. 실제로 당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정치적 계기”(수도권 재선 의원), “싸우라는 건 국민적 요구”(원내대표실 관계자) 등의 반응을 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 선명성 경쟁도 투쟁 수위를 높이는 요인이다. 23일 로텐더홀 점거는 비주류 모임인 ‘국민모임’과 주류 초·재선 모임인 ‘다시 민주주의’의 경쟁적 목표였다. 두 모임의 핵심 인사들은 최근까지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 등 당내 현안을 놓고 대립해 왔지만 이젠 강경 노선을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입법 드라이브를 막기 위해 만든 ‘MB악법’이란 이분법적 프레임도 민주당의 퇴로를 막고 있다. 민주당이 “철회”를 주장하는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원내대표단에 속한 한 의원은 “내용에 비해 상징적 의미가 너무 커졌다”고 토로했다. 해당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의 한 의원도 “국회에 들어가자는 사람이 미디어법 통과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라고 털어놨다.

 임장혁 기자


선진당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4일 “국회의원이 국회 밖에서 뭘 하나. 우리가 끝까지 안 들어간다고 하면 민주당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다. 그는 또 “이번 주말까지 여야가 협상하지 못하면 다음 주 월요일(29일) (국회 등원 여부를) 결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진당은 그동안 국회 개회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중간적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소집한 임시국회에 참여하는 쪽으로 기울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 온 것은 한나라당은 좀 더 집요하고 성의 있게 야당을 설득하고, 민주당은 고집부리지 말고 들어가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우리는 어쨌든 등원하는 게 원칙이니 일단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 등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청와대에서 회담할 때(20일)도 박희태 대표, 이명박 대통령한테 중요한 것은 여당이 야당, 특히 민주당을 집요하고 진실하게 설득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상임위별로 선별적으로 등원할 수도 있다는 관측에 대해 “우리는 등원을 결정하면 다 들어간다”며 “쩨쩨하게 이건 들어가고 저건 안 들어가고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이 내건 5대 국회 개회 조건과 관련, “국회의원이 국회 들어가는데 뭐 해내라고 할 필요가 있나”라며 “다만 개회 조건과 상관없이 특검과 검찰제도개혁특위는 국회가 열리면 하자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미디어법에 대해서도 “개회 조건으로 달면 안 되고 원래 여야 간에 처리하기로 약속됐으면 처리해야 한다”며 “다만 민주당이 응하지 않는다고 바로 표결 처리하는 건 안 된다. 정상적으로 상임위에서 논의해 처리하자”고 말했다.

그는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의 ‘중도실용론’과 관련, “중도우나 중도좌가 있는 것이지 좌도 우도 아닌 순수한 중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환상”이라고 말했다. 국민 통합을 목표로 한 사회통합위원회 설치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권 때 걸핏하면 위원회를 만들어 결국 정부기구를 늘리고 예산만 퍼 넣었는데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일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