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리말 바루기 14. 방짜 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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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기상이변으로 예년에 비해 비 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무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요즘 식중독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여름철 불청객인 식중독과 대비돼 떠오르는 말이 '방짜 유기'다. '방자 유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방짜 유기란 구리 78%와 주석 22% 비율로 합금한 우리나라 특유의 금속 제조 기법이다. 주물 유기와 달리 정확한 비율로 합금된 놋쇠를 불에 달궈 망치질을 되풀이해 얇게 늘여가며 형태를 잡아가는 방식이다. 방짜 유기에 음식을 담으면 O-157 식중독균이 죽고, 음식에 있는 농약 성분이 빠진다는 놀라운 실험 결과도 있다.

방짜 유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놋그릇이 안성 유기다. 안성 유기는 장에 내다 파는 '장내기'와 주문을 받아 만드는 '맞춤'이 있었다. 장내기도 좋았지만 맞춤 그릇의 질이 더욱 훌륭했기에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 지금은 "혼자 살기에 안성맞춤인 아파트"처럼 조건이나 상황이 어떤 일에 딱 맞다, 잘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

전에는 '마추다'(옷을 마추다)와 '맞추다'(돌 등으로 맞게 하다)를 구분해 사용했으나 한글맞춤법을 개정하면서 '맞추다'로 통일했다. 하지만 안성시에서는 이 지역 농특산물에 '안성마춤'이란 상표를 등록해 대표 브랜드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는 식구들과 함께 집 근처 놋그릇을 쓰는 보리밥집에라도 가서 우리 조상의 혜안을 생각하며 그 은은한 광택에 한번 취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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