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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촌지대책 '잘못된 당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일선 학교의 한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전달된 촌지 봉투를 들고 교장실로 찾아간다. "교장선생님, 어쩔 수 없이 촌지를 받았는데 신고합니다." 흐뭇한 표정의 교장선생님은 "촌지는 포기했으니 그 대신 성과금을 주고 연말 모범공무원으로 추천해 포상을 받게 하겠다" 고 말한다.

교장선생님은 교무회의에서도 "XX선생님이 촌지를 반환했으니 여러분들도 모범을 보여달라" 고 당부한다.

생경한 장면같지만 교육부측은 "앞으로 일선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질 광경" 이라고 믿는 것 같다.

지난 5월 일선 학교에 '촌지받는 즉시 해임' 이란 비상대책을 선포했던 교육부가 10일 시도교육감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추방대책을 내놨다.

과연 실현가능한 일일까. 올초부터 시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 학교마다 촌지반환 접수처가 설치됐지만 반년이 되도록 촌지접수 사례가 보고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익명으로 촌지신고를 받겠다는 이같은 유인책도 별무 성과란 얘기다.

그런데 촌지거절 교사에게 성과금과 함께 인사상 우대한다는 이번 교육부의 대책은 "나 촌지받았다" 고 밝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촌지를 거절하지 않고 받은 오염된 교사가 이를 성과금으로 '촌지세탁' 을 하면서 인사상 혜택까지 누리게 됐다" 고 비아냥댄다.

촌지 거부를 체질화해 이를 아는 학부모도 줄 생각을 않는 청렴 교사와의 형평성은 어떻게 조절할지, 성과금의 재원은 어떻게 조성할지도 의문이다.

교육부의 대책을 전해들은 서울 시내 한 중학교 교사는 "선생님이 범죄자도 아니고 범죄 가능성이 높은 집단도 아니다.

제발 그만 내버려둬달라" 고 울분을 터뜨렸다.

교육계의 뿌리깊은 촌지문제는 양심적인 교사들과 이들이 스스로 주변을 감시.정화하는 자정노력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일부 오염 교사의 촌지문제로 침묵속에 반성중인 교단을 흔드는 이같은 졸속대책은 재고돼야 한다.

강홍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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