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 뵙고, 가르침 담아 가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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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와서 다산 선생(동상)을 뵙고, 선생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머리와 마음에 담아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산 정약용 동상과 명언비 공개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동상이 다산의 삶과 사상을 어떻게 담아내고 표현하는 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강진군이 19일 도암면 귤동리 다산 역사테마공원에서 가진 다산 정약용의 동상과 명언비 공개설명회에서 황주홍 군수가 밝힌 취지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년 동안 강진에 유배돼 살면서 많은 글을 남겼다.

다산의 청동 동상은 지름 30m의 돌 바닥 광장에 4.5m 높이로, 그 주변에 다산의 가르침을 새긴 명언비들과 함께 3월에 설치됐다.

조각가 박정환(광주교육대 교수)·신옥주씨 부부는 이날 설명회에서 “다산 동상 얼굴은 문헌 속 기록을 토대로 구강학 전문가 등에게 자문해 40대 중반의 얼굴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또 “양반의 상징인 갓과 두루마기를 벗어 버리고 백성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거친 바위와 흙이 어우러진 느낌으로 표현, 민초들과 함께 생활하고 실용을 중시한 삶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다산의 말씀을 새겨 동상 주위에 세운 명언비는 높이가 0.3~4.5m로 모두 49개다. 황병기 연세대 다산실학 연구원이 다산의 글 중 의미가 있는 것을 한글로 바꾼 다음 할머니·농민·어린이부터 전직 대통령과 예술가, 귀화인까지 각계각층 86명의 육필을 받아 돌에 새겼다.

조각가 박씨는 “원형 광장 안에 청동상과 함께 높고 낮은 돌기둥 숲(‘말씀의 숲’)을 조성하고, 돌기둥의 각 면에 선생께서 말씀하신 글들을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러 사람의 다양한 육필로 새기어 조형화했다”고 설명했다.

다산 역사테마공원은 다산 초당 부근 약 2만3000㎡에 조성됐고, 유물 전시관 외에 숙소를 갖춘 수련원도 있다.

이해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다산 ‘말씀의 숲’=명언비에 있는 다산의 가르침 중 일부를 골라 봤다.

(괄호 안은 친필로 써 준 사람)

- “사람이 문장을 지니는 것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소설가 한승원)

- “세상에서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김남조 시인)

-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에 미루지 않는 것이다” (김영복 할머니·90세)

- “인의예지라는 이름은 실천을 통해 얻게 되며 결코 마음속 이치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 “윗사람의 명령일지라도 법도에 어긋나고 백성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굴하지 말고 의연하고 확연히 자신을 지킴이 옳은 일이다” (황주홍 강진군수)

- “농촌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쓸모 없는 사람이다”

(김용복 영동농장 회장)

- “세상에서 가르쳐서는 안될 두 글자는 바로 소일(消日)이다” (마형렬 남양건설 회장)

-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후하게 섬겨서는 안 된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

- “백 마디의 말이 믿음직해도 한 마디의 거짓말을 조심하라” (이준보 광주고검장)

- “하느님은 하늘과 땅과 천신과 인간을 초월하여 그것들을 창조하고 길러내는 자 이다” (정진석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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