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기업매각 전문가에 맡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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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기업들은 '회사 (또는 부동산) 를 판다' 고 소문내고 다닌다.

정부의 종용과 여론에 떼밀려 나선 사정은 이해하지만 이는 정신나간 짓이다.

원래 이런 일은 비밀히 진행돼야 한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십중팔구 나쁜 소문이 생기고 급기야 싸구려로 전락하게 된다.

모두 건드려 보고 그냥 둔다면 뭔가 흠이 있을 거라는 지레짐작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다.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집을 팔 때도 부동산중개인과 위임계약을 한다.

'전권이 위임된' 일거리가 아닌데 전력투구할 중개인은 없을 것이다.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개인이 외국회사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제 머리 제가 깎는 서투른 아마추어리즘은 버려야 한다.

기업을 사고 파는 시장엔 증권회사.로펌 (법률회사).컨설팅컴퍼니.인수 합병 (M&A) 전문부티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다.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파는 경우라면 부동산전문 컨설팅회사가 더 훌륭한 노하우를 갖추고 있을 법하다.

이들이 하는 첫 작업은 매각대상이 '팔리기 쉽게' 화장을 시키는 것이다.

속임수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재무상태를 평가하고 시세를 분석하는 등 매수인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매각대상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말하자면 궁합이 잘 맞는 매수인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자문역할인데 국내에선 그동안 전문가가 생겨날 만큼 일감이 충분치 않았다.

따라서 외환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허둥지둥 관련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준 (準) 프로들로 임시변통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시행착오가 따랐고, 외채상환연장 등 대외관계는 아예 미국계 은행과 증권사들에 맡겨야 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위기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가들이 번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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