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배우 같지 않은, 모타이 아줌마의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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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06면

가끔 기대하지 않던 ‘대박’을 건지게 될 때가 있는데 내게는 ‘요시노 이발관’이라는 영화가 그런 작품이었다. 지난달 아무 준비 없이 내려갔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단지 ‘표가 남아 있어서’라는 이유. 하지만 화면에

이영희 기자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비친 여주인공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앗, 정말?”이라며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다. 동네 아이들의 ‘바가지 머리’를 책임지는 마을 유일의 헤어스타일리스트 요시노 아줌마. ‘카모메 식당’ ‘안경’ 등의 영화를 보면서 “저 ‘일반인 포스’를 내뿜는 아줌마는 과연 누굴까?”라고 내내 궁금해했던 바로 그 배우, 모타이 마사코(57·사진)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요시노 이발관’은 ‘청정 웰빙 영화’로 호평받는 ‘카모메 식당’과 ‘안경’을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다. 모타이 아줌마는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 세 편에 줄줄이 출연한 셈. 이 세 편의 영화는 공통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할 것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특별한 사건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구성을 자랑하는데,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배우 같지 않은 모타이 아줌마의 외모는 이 영화들 속에 그야말로 절묘하게 녹아든다. 게다가 본인은 한없이 진지한데 보는 이들에게는 큭큭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그 ‘무표정의 카리스마’는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줌마가 어떻게 배우가 됐을까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봤다. 원래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 제작팀에서 일했던 그녀는 우연히 오른 무대에서 독특한 연기로 호평받으며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조연을 맡던 중 한 방충제 광고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광고에 등장한 “남편은 그저 건강하고 자주 집을 비우는 게 좋아(亭主元で留守がいい)”라는 대사가 아줌마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유행어가 됐던 것. 이후 1989년 ‘역시 고양이가 좋아’라는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출연하면서 모타이 아줌마는 ‘코믹 연기의 대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그저 ‘웃기다’는 표현만으론 좀 섭섭하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오기가미 감독의 영화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게 바로 모타이 아줌마의 연기다. ‘카모메 식당’에서 살찐 갈매기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그녀의 뒷모습은 정말로 쓸쓸해 보였고, ‘안경’을 볼 땐 당장이라도 그 섬으로 찾아가 ‘메르시 체조’를 배우고 싶었다. 그 리얼함 덕분에 이런 공상에까지 빠져들고 말았다.

‘요시노 이발관’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깎던 바로 그 아줌마가, 어느 날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문득 핀란드로 떠나 ‘카모메 식당’에 머물다가, 매년 봄이 되면 ‘안경’의 바닷가 마을을 방문해 팥빙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젊은 남자배우 가운데 ‘일반인 포스’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배우가 카세 료다. 이런 카세 료가 주연한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에 모타이 아줌마는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엄마로 출연한다.

비슷한 소재의 한국영화 ‘마더’에서 쇠창살을 부여잡은 채 “아무도 믿지 말고 엄마만 믿어”라고 속삭이는 김혜자 아줌마의 연기도 ‘명품’이었지만, 근심 어린 얼굴로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화를 내는 모타이 아줌마표 엄마도 꽤나 설득력이 있다. 그녀는 이 영화로 2007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가요·만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스마프(SMAP)’를 향한 팬심으로 일본어·일본 문화를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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