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공단 통행·체류 제한 해제할 뜻 비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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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 관련 차량들이 출경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파주 AP=연합뉴스]

북한이 19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에서 지난해 12월 1일 내린 공단 통행·체류 제한 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다음 달 2일 후속 회담에도 동의해 북한이 당장 개성공단 폐쇄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은 일단 줄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발언을 비난하고 토지 임대료와 임금 인상 요구를 고수해 향후 협상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남측 대표단은 남북 합동으로 제3국 공단을 시찰하자고 제의했으나 북한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회담에서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관리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출입제한 조치를 철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김영탁 남측 대표단장(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근대표)이 전했다. 그는 “앞으로 논의되는 과정을 통해서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12·1 조치는 북한이 공단 내 통행 시간대를 대폭 축소하고 공단 체류 인원도 800여 명 줄이도록 한 조치다.

반면 북한은 토지 임대료 5억 달러 지급 요구에 대해선 “군사적 요충지인 개성을 남측에 내줬으니 5억 달러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자 월급을 300달러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한 데 대해선 “우리 노동자들은 제3국에 비해 우수한 노동력”이라고 반복한 뒤 “특히 남측 입주 기업들로선 같은 말을 쓰는 이점이 있다”고 새로운 논리를 추가했다.

북한이 비난을 계속하면서도 남측 대표단이 제의한 오후 회담에 나오고 후속 회담 날짜까지 잡음으로써 회담의 불씨는 계속 살려둔 셈이 됐다. 이런 북한의 의도에 대해 일각에선 북한이 후계 구축 과정에서 대남 관리용으로 개성공단 협상을 지속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현(북한학)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진짜 12·1 조치를 해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그러나 북한이 공단을 매개로 대남 협상을 계속하는 배경에는 후계 구축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한·미의 군사적 압박 조치를 사전에 막으면서 남측 여론에 대북 유화론을 유도하는 대남 관리 차원이 포함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측 대표단은 회담에서 33쪽의 기조발제문을 40여 분간 낭독하며 북한에 ▶남북 합의·계약·법규 반드시 준수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한 공단 발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단 육성이라는 3원칙을 제시했다.

◆북 ‘무엇이 무리하다는 건가’=북한은 또 최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과 관련, “(남측이) 6·15 선언과 ‘우리 민족끼리’ 정신을 잊고 날뛰고 있으며, 제재·봉쇄는 곧 전쟁과 다름없다”고 거듭 위협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 (공단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대답할 수 없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무엇이 무리하다는 것인가”라며 비난했다. ‘해외에서 공단 얘기를 꺼낸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태도라면) 공단이 제대로 되겠는가’라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유씨 일방적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을 듯=남측 대표단은 82일째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직원 유씨에게 가족들의 편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신변에) 별 일이 없다. 유씨 가족에게 이 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어 “유씨 문제는 ‘개성·금강산지구 남북 합의서’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남측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유씨를 법정에 세우지 않겠다는 뜻도 시사했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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