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기업 기관장 평가] “미흡 판정 받을 줄 몰랐다 … 할 말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관장 평가에서 ‘미흡’ 판정을 받을 줄 몰랐다. 당혹스럽다는 것 외에 할 말이 없다.”

2008년도 공공기관장 평가에서 해임 건의 대상이 된 영화진흥위원회 등 4개 기관은 하나같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기관장·기관 평가 모두 최하위를 받은 영진위는 이날 결과가 나온 직후 강한섭 위원장과 간부들이 오후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동국대 가정교육학과 교수였던 박명희 한국소비자원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며 “어쨌든 정부 평가가 그렇다면 학교로 돌아가 예전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봉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동흔 한국청소년수련원 이사장은 “부임 후 최선을 다해 왔다.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는 “평가 기준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관장 경고를 받은 공공기관들은 대부분 “평가에 이견이 있다”면서도 “기관이 아니라 기관장 개인에 대한 것이어서 회사 차원의 입장 발표는 하지 않기로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불만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평가가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 의문이 있다”며 “평가점수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한 기관장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공기관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석탄공사는 2007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법인카드로 이른바 ‘카드깡’을 하는 식으로 8600만원을 마련해 회식비 등으로 썼다가 최근 감사원에 적발됐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전 사장과 임원·간부 등 7명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승진 청탁과 사례금조로 수천만원을 주고받은 혐의로 이달 초 구속 기소됐다.

부실·방만 경영도 여전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97개 공공기관의 당기순이익 합계액은 7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7%나 줄었다. 부채는 1년 새 16.2% 늘어 320조700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1인당 평균 임금은 5500만원으로 3% 늘었다. 한국산업은행 등 14개 기관은 직원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을 넘었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복지 혜택을 늘리는 고질병도 여전했다. 지난해 67개 기관이 직원들에게 지원한 주택자금 규모는 2007년에 비해 43% 늘어난 1692억원에 달했다.

권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