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취임 기자회견 "국가관 제대로 된 정부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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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左)가 20일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에게서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 난을 받고 있다. [김형수 기자]

20일 취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당사 기자실로 들어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머리엔 흰 머리카락이 많이 늘어 있었다. 박 대표는 웃으며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얼굴엔 피곤한 기운이 스쳤다. 전날 치러진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할 게 확실시됐지만 선거 기간 체력을 많이 소모한 듯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당원들의 전폭적 지지 속에 재선출된 때문인지 자신감이 묻어났다. 여당과 정부에 대한 질문에는 전에 없이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특히 대북정책과 안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자세에 대해선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침범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박 대표는 "국가관이 제대로 된 정부인가, 우리나라 정체성에 회의가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이 정부의 국가이념과 안보에 대한 생각을 지켜봤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라가 위험해지고 있다"고도 했다. 박 대표는 "지금 대북문제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정부의 자세"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민이 정부에 대북문제를 맡겨도 안보나 국가 정체성에 대해 이 정도면 믿을 만하다고 할 때 대북문제를 안심하고 합의해 주는 것인데 그 자체가 흔들릴 때는 대북문제는 잘 안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대북 특사설'에 대해 "실체도 없는 것을 여러번 질문받는다, 언론에서 본 게 다라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계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 언제든 찾아뵙고 남북문제를 비롯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새 수도 건설과 관련해 박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자꾸 찬반을 결정하라고 몰아세운다면 지난번과 똑같이 또 한번 정치적 판단을 하라는 것밖엔 안 된다"며 "여야의 당리당략을 초월해 국가문제를 심도있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정치관계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선 "지난번에 급히 (개정)해서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지만 기본 정신과 틀을 어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여권의 공세에 대해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여권의 공격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여권이)야당 대표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계속 이야기한다"며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돌아가신 분과 싸우겠다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툭하면 내가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있다는데 내가 먼저 아버지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예결위 상임위 전환에 대해선 "다른 야당들과 힘을 합쳐 추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나타냈고, 당명 개정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에 맞춰 개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당 사무처 직원 80여명과 당사 앞 고깃집에서 저녁 회식을 했다. 구조조정과 당사 이전 등으로 고생한 직원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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