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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관계법 개정 이번엔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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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치관계법 개정이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역시 정치관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여권이 정치관계법 개정을 제안한 의도를 두고 해석이 구구하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정당법.선거법.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여야가 협상에 나섰다. 그 결과 정치관계법 개정이 눈앞으로 닥친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자연히 정략적이고 현역 의원 중심으로 개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도 총선을 겨우 38일 앞두고서야 간신히 정치관계법 개정이 이뤄졌다.

*** 중대선거구제 등 진통 불가피

그런 점에서 볼 때 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정치관계법 개정 논의가 제기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지난 대선 불과 1년 전만 해도 노무현 돌풍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정치 세계에서 3~4년은 너무도 긴 세월이므로 지금의 개정안이 가져올 결과를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시점이라면 눈앞의 이해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정치관계법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여야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선거 때문에 합의하지 못했던 선거연령 하향 문제는 쉽게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구당 폐지 역시 어떤 형태로든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상향식 정치참여라는 원론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역구에 사무실을 상설화할 수 있는 현역의원과 그렇지 못한 도전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가 쉽지 않은 사안도 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과거에 노 대통령 역시 비슷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겠다는 개정의 명분은 지역주의 타파다.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하에서는, 예컨대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30%를 득표하더라도 낙선하기 쉽다. 그러나 한 선거구에서 2인이나 3인을 선출하게 되면 적어도 한 석은 건질 수 있게 된다. 역으로 광주에서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로 의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적어도 한 정당이 특정 지역의 의석을 독식하게 되는 일은 사라질 것이고 그만큼 지역주의가 약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잃을 수 있는 영남의 의석수는 많은 반면, 의석수가 적은 호남에서 건질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 추진이 지역주의 해소라는 명분 하에 여당이 영남권을 공략하려는 '트로이의 목마'로 보고 있다.

정치자금법에 대한 개정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지난번에 개정된 정치관계법 가운데 비교적 여론의 가장 좋은 반응을 받았던 것이 정치자금 관련 사안이었다. 대선 자금 수사와 차떼기로 분노하는 유권자를 달래기 위해 정치권이 마지못해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한 탓에 지난 총선에서는 피부로 느낄 만큼 돈선거의 문제가 개선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힘드니 다시 고치자고 하는 것은 정치자금법 개정이 결국 선거용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어떤 경우에도 돈선거와 돈정치를 추방하자는 현행 선거법의 큰 틀 원칙이 훼손돼선 안 된다.

*** 돈선거 추방 큰 틀 훼손 말아야

그동안 선거 때마다 매번 정치관계법에 손을 대야 할 만큼 불완전한 개정이 계속됐던 원인은 선거를 눈앞에 두고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처리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각 당 모두 정략적 차원에서 다뤘기 때문이다. 정치의 경기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각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보는 상황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개정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치관계법 개정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정치권 외부의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협의 기구를 마련하고 거기서 제시된 안을 정치권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보다 옳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모처럼 시기적으로 적절한 때에 제기된 정치관계법 개정 논의가 정치개혁으로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정치권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