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현재의 경제위기 배경과 앞날 진단한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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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해 7월 태국 바트화의 평가절하를 신호탄으로 촉발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 최근 주가와 통화가치가 동반하락함에 따라 과연 '나락' 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국가 전체의 구조조정이란 혹독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쾌속성장의 신화를 구가하며 서구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동아시아 용' 들이 일순간에 무릎을 꿇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에겐 '퇴색한' 과거만 있을 뿐 '찬란한' 미래는 다시는 없다는 것인가.

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앞날을 진단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다음주 초 발간될 '위기의 아시아, 한국의 선택' 은 비약적 성장을 자랑했던 동아시아의 내재적 문제점을 거론한다 (21세기북스刊) .성장의 원인이 바로 붕괴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 (S&P) 의 아시아 통화 분석관으로 있는 캘럼 핸더슨. 현 경제난국에 대한 서구인의 시각을 그대로 엿보게 한다.

우선 그는 다양한 수치와 자료를 들이대며 아시아 통화위기는 허약한 경제체질에서 비롯됐다고 꼬집는다.

이 지역 나라들이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을 채택함으로써 제조.금융업 모두 해외자본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내부 자생력이 극도로 떨어졌다는 것. 따라서 저자는 "수출주도형 경제를 소비자중심 경제로 탈바꿈시키고 견실한 국내시장에 기초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아시아의 장래에 낙관적이라는 사실. 높은 저축률.낮은 세율.열성적 교육 등이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대응에 따라 현재의 난국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82년의 중남미나 95년의 멕시코와 달리 동아시아는 국가부채보다 기업.은행의 부채가 많아 '해법' 은 더 길고 복잡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조언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저자는 일본이 지난 7년 동안 부실대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아직도 휘청거리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우리의 신속한 금융개혁을 선결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도서출판 삼인에서 비슷한 시기에 나올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실패했는가' 는 국내 학자들의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다.

지난 87년 6월항쟁의 열기 속에서 창립된 한국정치연구회 (회장 손호철.서강대교수) 를 중심으로 관련 학자 9명의 글이 실렸다.

우리는 물론 일본.대만.인도네시아.태국 등 국가별 분석이 구체적이고 자상하다.

저자들은 특히 '동아시아 모델' 이라는 용어에 질문을 던진다.

이들 나라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모형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 일례로 동아시아의 특징으로 흔히 국가주도형 산업화, 양질의 노동력, 공동체적인 유교자본주의가 거론되는데 그렇다면 왜 동아시아 모델에 훨씬 가까운 대만이 홍콩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이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이에 저자들은 최근 상황을 동아시아 자체의 위기라기보다 모든 것이 시장논리에 지배되는 무한경쟁과 벌거벗은 적자생존의 사회적 다윈주의가 절정에 달한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손호철 교수는 "IMF 덕분에 우리는 한국사회의 낡은 모델에 대한 대수술의 기회를 가졌다" 며 "자본논리를 우선하는 정부의 해결방식과 생존권 차원의 시민운동이 지혜를 모아 효과적 대안을 마련할 때" 라고 강조한다.

이밖에 일본 경제평론가 하세가와 게이타로 (長谷川慶太郎) 는 '아시아의 비극' 에서 지난해 이후 불어닥친 아시아 각국의 금융위기를 일목요연하게 돌아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사刊) .정부의 과보호 밑에서 성장한 한국경제의 맹점을 들춰내는 한편 혹시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중국경제의 파탄이 부를 엄청난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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