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 노숙자 다수 투표권리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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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IMF가 빚어낸 선거계절의 정치실종 현상 - ' . 1천명이상으로 추정되는 서울시내 실직 노숙자들은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과연 이들은 투표의사가 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3일 오전 서울역 지하차도. 궂은 날씨 때문에 막노동 조차 못하게 된 노숙자들이 희망잃은 표정을 하고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다.

투표의사를 묻는 질문에 두달전 충남대천에서 올라왔다는 申모 (49) 씨는 "엿장수가 되더라도 주권행사는 해야겠지만…" 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그러나 申씨가 실제로 투표를 하려면 선거인 명부에 등재돼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일선 동사무소들이 지난 4월 한달간을 '주민등록 일제 정리기간' 으로 설정, 주민등록만 올려 놓고 거주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주민등록을 말소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申씨를 포함한 많은 노숙자들이 투표권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비닐가공 공장에서 일하다 보름전에 실직한뒤 노숙을 하고 있다는 河모 (43) 씨는 투표권도 있고 투표의사도 갖고 있으나 4일 투표여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실직후 아내가 아들 (중2) 과 친정으로 가버렸고 노숙하며 술로 몸이 망가졌는데 이 몰골로 어떻게 투표하러 갈 수나 있을지…. " 유권자로서의 권리행사 보다 가장으로서 구겨진 체면이 더 무겁게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볼멘 소리다.

또 서울역 등에서 만난 노숙자들 중에는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언제 선거 치르느냐" "서울시장이 정말 일곱명이나 나오느냐" 는 등 엉뚱한 질문을 내뱉는가 하면 "내 코가 석자인데 투표는 무슨 투표" 라는 짙은 냉소주의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사이에는 선거가 자신들과는 무관하게 벌어지고 있는 '남의 잔치' 라는 극도의 무관심이 팽패배 있는 것이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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