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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어제를 만나다 ④ ‘거리의 재발견’ 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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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언덕 위에 자리잡은 선교사 주택. 100년 전 미국인 선교사가 살았던 집은 요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대구 시민이 꼽는 최고의 웨딩사진 포인트.

계산성당

우리나라에서 셋째로 큰 도시 대구. 그러나 여행자에게 대구는 그리 인상 깊은 도시가 못 된다. 특출한 역사적 배경도, 내로라하는 음식도 전해지는 게 별로 없어서다. 그저 유난히 뜨거운 여름과 6·25전쟁 당시 피란민이 모여 살던 비좁은 골목, 역사와 무관한 고층 빌딩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러나 대구에도 역사의 흔적은 있다. 한 세기 전 근대화의 흔적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복닥거리며 살던 우리네 모습이 골목 모퉁이마다 들어앉아 있다. 대구는 그 후미진 골목으로 인해 여느 대도시와 구분된다. 옛 대구읍성 언저리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좁은 길 안에 100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그래서 대구에선 골목을 봐야 한다. 대구의 문화운동단체 거리문화시민연대가 8년간의 답사 끝에 완성한 ‘대구 골목 투어’의 대표 코스인 ‘남성로~종로~진골목’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사과의 고향
동산 선교사 주택

옛 대구읍성 남서쪽에 동산(東山)이란 언덕이 있다. 이 언덕에 10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웠다. 그 학교가 대구 최초의 여자학교 신명학교이며, 그 병원이 지금도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동산병원이다. 언덕 위 제일교회 왼편에 그림 같은 주택이 줄지어 있다. 미국 선교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교육·역사·의료 박물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배경이 예뻐 요즘엔 웨딩사진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영화에도 제법 등장했다. 또 언덕 곳곳엔 역시 선교사들이 심은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대구의 명물 사과는 그러니까 이 언덕이 고향인 셈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
계산성당

대구에서 가장 역사적인 공간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했고, 서울 명동성당을 지었던 중국인들이 내려와 1902년 지었다. 서울·평양에 이어 세 번째 세운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사적 290호다. 성당의 지금 모습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스테인드글라스에 12사도 말고도 서상돈·김종학·정규옥 등 대구의 초기 천주교 신자의 모습(사진)이 그려져 있고, 성당 마룻돌은 대구읍성을 허물고 난 뒤 나온 돌을 깐 것이다. 계산성당은 한때 성모성당이라 불렸는데, 시인 이상화가 이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나의 침실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대구 시민이 지켰다
이상화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1901~43)가 숨지기 직전 4년을 살았던 집이다. 8월 12일 개관을 앞두고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다. 시인이 죽은 뒤 이 집은 한동안 요정으로 쓰였고, 이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대구 시민들은 50만 명이 서명한 탄원서와 모금액 8600만원을 들고 대구시청을 찾아갔다. 2006년 이 일대를 구입한 건설회사가 상화 고택을 대구시에 기증해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 예약을 하면 문화해설사가 설명해 준다. 053-256-3762. 건너편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1850∼1913) 선생의 고택이 있다.

가수 현미가 떡장사했던 곳
염매시장

‘염가판매’시장의 준말이다. 대구읍성 바깥에 늘어선 좁은 시장 골목이 100년이 다 되도록 유지되고 있다. 혼수 떡 전문의 떡전골목, 돼지고기 수육을 전문으로 하는 수육골목, 이유식 골목 등이 규모는 축소됐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수 현미씨가 한국전쟁 중에 피란을 왔다가 여기서 떡장사를 했단다. 이 시장 끄트머리의 ‘곡주사(053-255-4524)’란 선술집은 70년대부터 대구 대학생의 아지트로 유명한 곳이다.

어르신 위한 명소
미도다방

진골목. 경상도 말로 ‘길다’가 ‘질다’로 통해 붙은 이름이다. 그만큼 길게 이어진 골목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때부터 있던 골목으로 1905년 대구읍성 지도에도 표시돼 있다. 진골목 모퉁이마다 들어선 식당·의원·요정·다방은 하나같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미도다방(053-252-9999)’일 듯싶다. 여기가 특별한 건 어르신만을 위한 다방이어서다. 손님 모두 60대 이상 어르신이다. 정인숙 사장(사진)이 82년 처음 문을 열었고, 그 뒤로 대구·경북 지역의 원로 정치인·유림·문인 사이에서 명소가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준규 전 국회의장, 김종필 전 총리도 들렀단다. 약차 2000원, 커피 1500원.

한약 냄새가 몸에 배다
약전골목

대구 약령시 약전골목에 들어섰다. 700m가 넘는 거리에 한약방·약업사·제분소 등이 빽빽이 들어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한약 골목이란 설명이 무색하지 않다. 60년대만 해도 약초꾼 사이에서 “영 쇠러 가다”란 말이 돌았단다. 똑같은 약초라도 대구 약령시에 들어왔다 가야 효험이 있다 해서 생긴 말이란다. 약전골목 복판 제일교회 옆에 약령시한의약전시관이 있다. 약전골목 바로 위가 화교 집성촌 장관동이다. 이곳은 한국문학사에서도 소중한 공간이다. 소설가 김원일씨가 자신의 피란 시절 경험을 담은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이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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