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 핵질서 깨지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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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번 인도의 핵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파키스탄이 28일 다섯차례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로써 서남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이 됐다.

이미 세차례나 전쟁을 치른 양국이 다시 전쟁을 벌일 경우 핵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마저 생겼다.

이번 사태로 먼저 우려되는 것은 핵개발 도미노현상이다. 파키스탄의 이웃인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리비아 등 회교국가, 그리고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로 번져나갈 것이다.

북한도 요주의 (要注意) 다. 최근 북한은 미국이 약속한 중유 공급의 차질 등을 이유로 핵개발 재개 가능성을 비치고 있다.

특히 북한은 파키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제공한 바 있어 파키스탄과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핵개발을 서두를지 모른다. 이같은 현상은 곧바로 세계 핵질서의 붕괴로 연결된다.

현재 세계 핵질서는 5대 강대국의 핵독점하에 핵확산금지조약 (NPT) 과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CTBT) 두 기둥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CTBT는 비준대상 44개국중 불과 13개국만이 비준을 마친 상태로, 앞으로 비준대상국들이 인도.파키스탄의 예를 들어 비준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NPT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현재의 핵질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핵강대국들은 핵보유국수 확대를 막는 수평적 확산 저지에만 관심있을 뿐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줄이는 수직적 확산을 막는 데는 소극적이다.

이들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는 무려 3만5천개로 인류를 25번 멸망시킬 수 있는 양이다. 핵강대국들은 앞으로 인도.파키스탄에 대한 제재조치와 함께 보유 핵무기를 줄이는 진정한 노력을 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경제제재를 받으면 파키스탄 경제는 당장 파탄이 불가피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도 역시 비슷한 형편이다. 국민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핵무기와 전쟁이 아니라 빵과 평화다.

우리는 잘못된 민족지상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역사에서 봐왔다.

굶주리는 국민을 외면하고 핵무기나 만드는 민족지상주의는 광신 (狂信)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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