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비방·흑색선전]사상최악 이유는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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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종반으로 치닫는 6.4 지방선거에 적신호 (赤信號)가 켜졌다.

적신호는 다름 아닌 흑색선전과 상호 비방이다.

후보들뿐 아니라 중앙당까지 가세, 한데 뒤엉켜 벌이는 흑색선전으로 선거 분위기가 난장판이 되고 있다.

전국 시.도 선관위가 28일까지 적발한 흑색.비방건수는 전담단속반을 운용했던 지난 15대 대선 (26건) , 15대 총선 (31건)에 비해 10배 가까이나 된다.

후보자 수가 1만여명에 달한다고 해도 엄청난 숫자다.

각종 제도개혁으로 돈 선거가 주춤하는 틈을 타 흑색선전은 각 정당과 후보들의 새로운 선거 주특기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흑색.비방은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관위 적발건수는 후보등록 직후인 지난 20~21일 12건에서 26~27일에는 81건으로 급증했다.

증가추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특히 판세가 미세하거나 여야 전략지역일수록 막판 뒤집기를 노리는 후보들의 소총사격에 중앙당의 포 (砲) 지원이 겹쳐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권역별로 볼 때 흑색.비방이 가장 극심한 지역은 수도권과 영남권이다.

선거 최대 접전지역인 경기의 경우 선관위 적발건수가 30건으로 16개 시.도를 통틀어 최고다.

더구나 흑색.비방 사례의 대부분은 지역감정 부추기기다.

적발건수가 73건으로 권역별 수위를 차지한 영남권에선 '우리가 남이가' 부터 '영남 싹쓸이' 까지 자극적인 말 찾기 경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또 공동정권이면서도 연합공천에 실패한 충청권에선 국민회의와 자민련 후보들간 지역감정에 호소한 상호 비방전까지 맞물리고 있다.

지방선거가 흑색.비방전으로 흐르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여야간 정권교체라는 뒤바뀐 정치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선거다.

집권당 선거에 익숙한 한나라당의 경우 야당으로 변신한 지금 돈 사정이 풍족한 것도 아니고 정책을 내세울 수도 없다.

네거티브 선거 유혹을 받을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정당별 적발건수로 봐도 한나라당은 전체의 36.3%로 가장 많다.

반면 여당으로 변신한 국민회의와 자민련 후보들도 야당시절 선거운동 습관을 탈피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어설픈 야당의 공세에다 집권당 체질에 익숙지 않은 여당이 맞불을 놓으면서 흑색.비방전은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여론의 감시와 선거법 개정, IMF 경제난으로 금권선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흑색.비방전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다.

여야 정당과 후보들은 '돈' 이 묶이면서 '입' 에 선거의 승패를 걸고 있다.

유권자들은 돈 선거뿐 아니라 흑색.비방선거에도 단호해져야 한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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