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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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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전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산에 갑니다. 자식이 말썽을 부려 화가 날 때도, 회사 일이 꼬여 짜증이 날 때도, 오늘처럼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이 될 때도 그냥 올라갑니다. 언제부턴가 아주 습관이 돼 버렸습니다. 그럼 그때마다 언제나 해답을 얻어 갖고 내려오게 되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산에 오르다 적당한 바위에 앉거나 누워 기도나 명상을 합니다.

들숨 날숨, 깊은 호흡을 천천히 반복하다 보면 조금 전까지 전혀 들리지 않았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찬찬히 들리기 시작합니다. 시냇물, 갖가지 새들, 바람, 날아다니는 벌레 소리까지. 또 보이지 않던 온갖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산벚나무 열매, 버들치, 이름 모를 노란 꽃, 구름, 바위의 얼굴도. 그러면서 어느덧 고통과 고민은 사그라져 버립니다. 그 틈새로 마음의 여유와 평화가 풍선의 바람처럼 차오르게 되지요.

물론 산에서 내려와 허둥대며 사람들과 부대끼게 되는 아침 출근길에서 평화로움은 몽땅 사라지지만 그래도 저한테는 이 ‘충전’의 시간이 너무나 귀중합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전 벌써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 아내는 제 성격이 무척 소심하다는 걸 잘 압니다. 겉으론 사내대장부 운운하며 대담한 척하지만 실은 사소한 일에 잘 삐친다고 ‘삐돌이’라며 아이들과 합세해 놀려대기 일쑤지요. 가끔은 스스로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눈도 깜빡대고,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가슴도 벌렁거립니다.

몇 년 전 어쩔 수 없이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됐을 땐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순간을 모면하고는 다시 이런 자리엔 서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보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늘 제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요.

소심하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더 잘 받게 되는 제가 지금껏 나름대로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산, 자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지럽게 방전된 에너지를 자연이 빵빵하게 충전해 준다고 전 믿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이 제 성격까지 개조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사실 소심하거나 조급한 자연은 없지요. 늘 남들보다 더 뛰어나길 원하고, 조금이라도 더 부자가 되고 싶어 고심하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들 중에만 유독 조급증 환자가 있을 뿐….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고 하신 법정 스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평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렸다면 잠시라도 가급적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상하게 그 싫던 사람들이 갑자기, 몹시 그리워지게도 됩니다. 또한 자연은 깨진 몸과 마음의 상처에 구석구석 약을 발라줍니다. 그러면서 어느덧 마음의 여유와 고요를 되찾게 해주지요.

다음 달이면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강이나 산이나 바다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자연을 꽉 껴안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진정한 휴식의 맛을 느끼고, 그 귀중함을 평소 자신의 생활 속으로 끌어와 습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과 같이 칼날처럼 서 있는 날카로운 세상이 훨씬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요?

김성구 샘터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