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땅 십승지를 가다]10.보령시 남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지난 79년 충남 대천 출신 작가 이문구는 '관촌수필' 을 통해 고향의 변화를 리얼하게 그려낸 바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렸다.

서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인 대천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한 해안을 연상케 할 만큼 변모했다. 해안으로 통하는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고 해변에는 모텔과 각종 유흥시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계절의 구분 없이, IMF라는 경제적 위기에도 이곳은 젊은 인파로 바다가 넘실거린다.

대천의 변모는 그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보령군 (保寧郡) 대천읍에서 86년 대천시로, 다시 95년에는 보령군과 통합하여 보령시로 이름까지 바꿨다.

보령시 산하에는 웅천읍과 남포면 (藍浦面) 등 1읍 10개 면이 있다. 비결서는 보령시의 남포를 십승지로 꼽고 있다.

보령시에서 서천으로 이어지는 21번 국도변에 있는 남포면은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된다. 보령시와 뚜렷한 경계가 없고 다만 남쪽으로 웅천읍과 고개 하나를 두고 있을 뿐이다.

서쪽은 바다다.

옛 남포현 시절에는 이곳에 성을 쌓아 서해안 방어진지로 이용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남포면을 피란지라고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곳 토박이 박창선 (72) 씨는 "예부터 십승지라는 말은 들었지만, 외지인이 일부러 찾아온 경우는 없었다" 고 잘라 말한다. 대천문화원 윤원석 (83) 원장은 남포라는 특정지역보다는 보령시 전체가 십승지의 하나라고 밝힌다.

"고려조 이래 보령은 '만세보령 (萬世保寧)' 이라 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고 한다. 그러나 그 까닭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주산에서 옥마산 (보령시와 남포면 동쪽에 있는 산)에 이르는 보령시의 산들이 모두 부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 덧붙였다. 그의 말은 이중환의 '택리지' 에서 남포를 언급한 글과 끈이 닿는다.

이중환은 "남포 성주산은 남쪽과 북쪽 두 산이 합해져서 큰 골이 됐다. 산중이 평탄하여 시내와 산이 맑고 깨끗하다.

산 밖에는 검은 옥이 나는데 벼루를 만들면 기이한 물건이 된다. 옛날 매월당 김시습이 홍산 무량사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곧 이 산이다.

시내와 계곡 사이에 또한 살 만한 곳이 많다" 고 했다. 그렇다. 십승지 남포는 오늘날 면소재지 쪽보다는 성주면 일대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성주사가 자리한 이곳은 비록 임진왜란이란 병화를 입었지만, 지금은 대천해수욕장과 함께 보령시의 관광.휴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름에 집착하면 본령을 보기 어렵다는 옛말을 남포는 일깨워 준 셈이다.

보령 = 최영주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