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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에세이]중국식 단골손님 접대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베이징 (北京) 의 한 한국상사 주재원 부인 金모씨는 최근 매우 화가 났다. 배신감마저 치밀었다. 단골로 거래하는 곡물가게 때문이다. 金모씨는 항상 자신이 가장 좋은 값에 쌀.깨 등 농산물을 구입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단골도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싼 값으로 농산물을 사는게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가 난 金씨는 다시는 그 가게엔 안 가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뭐가 잘못 됐을까. 단골로 믿었던 중국인 주인이 金씨 주부를 속인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또 다른 한국인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재원 신분으로 중국에 나온 이 한국인은 동네인 르탄 (日壇) 공원의 과일가게를 단골로 두었다.

이 과일가게에서 취급하는 과일들이 대부분 맛있고 값도 싸 산보를 겸한 과일쇼핑이 즐거운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평소 즐겨 찾던 귤의 가격이 며칠 안돼 자꾸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값이 조금 올랐거니 생각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귤값이 뛰었다.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인에게 따졌다.

"여보, 귤값이 왜 이렇게 며칠 사이로 계속 오르는거요. 단골에게 이럴 수 있는거요. " 그 중국인 주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당신이 내 가게에 자주 올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가격이 싸거나 물건이 좋다든지. " 중국인 주인은 한국 주재원이 계속해 찾는 한 값을 계속 올려받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문제는 '단골' 이란 개념이었다. 한국인은 단골을 좋아한다.

단골에게는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남보다 싸게 파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중국 상인들에겐 단골손님이라고 해서 혜택을 바라기 어렵다.

중국인의 셈엔 정 (情) 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중국에 살면서 '단골' 을 기대해선 안된다.

베이징=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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