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 주문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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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2월 8일자 표지사진으로 한국계인 미셸 리(39·사진) 워싱턴DC 교육감이 교실에서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실었다. ‘미국 교육 개혁의 기수’로 등장한 리 교육감이 무능 교사 퇴출에 나선 것을 상징한다.

이 사진을 본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DC 시의회 의장은 “미셸, 당신의 교육 개혁에 동참해야 할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난해서 얻는 게 뭡니까”라고 물었다.

워싱턴 포스트(WP)가 14일 리 교육감의 취임 2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교육개혁 성과를 평가한 기사를 실으면서 소개한 일화다. WP는 리 교육감이 학생당 교육비는 미국 최고 수준이면서도 학력은 바닥을 기는 워싱턴DC 교육에 새 바람을 몰고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학생들의 성적도 적지 않게 향상됐다.

리 교육감은 그러나 무능 교사를 교단에서 내쫓고, 성적이 떨어진 학교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WP는 “리 교육감이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교육 개혁에 대한 열의를 잃지 않았으나, 신념을 지속 가능한 변화로 만들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내와 관대함, 정치적 고려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리 교육감이 2년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 네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 명성은 반발을 부른다= 리 교육감의 과감한 개혁은 언론의 관심을 촉발했으나 교원노조의 반발을 불렀다. 교원노조는 그가 교사를 무능력하고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묘사한다고 비난했다. 학부모들도 개혁 논의 과정에서 소외됐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리 교육감도 최근 이런 불만을 수용했다. 지난 3월 교사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 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주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교사 등과 직접 소통해 전달 과정에서 의견이 왜곡 전달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돈이 전부가 아니다= 리 교육감은 지난해 여름 교사 연봉을 최고 13만1000달러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을 때 교원노조가 환호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그가 무능 교사를 퇴출하려고 당근을 제시한다고 보고 반발했다. 리 교육감은 “연봉 인상이 환영받을 거라 여긴 건 짧은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셋째, 정치가 중요하다=리 교육감은 워싱턴DC 교육위원회와 시의회를 개혁 논의에서 무시했다. 그레이 의장은 “미셸은 투명성을 높이고 소통을 활발히 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적대적으로 반응했다”고 지적했다. 리 교육감도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이에 따라 과거와는 달리 교육 관련 시의회 청문회에서 수시간 자리를 지킨다. 지난달에는 시의 원들을 찾아가 교육 재정 확충안에 협조를 부탁 하기도 했다.

◆넷째, 의외의 결과도 고려해야 한다=리 교육감이 지난해 단행한 23개 성적 부진 학교 폐쇄는 아프지만 필요한 조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학교 폐쇄는 해당 지역 인구 감소 등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불러왔다. 리 교육감은 “잘 짜인 개혁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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