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인을 잘 읽은 ‘외국 약 장수’ 돈 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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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단 한 차례 복용으로 질병에서 벗어나려는 급한 성격, 남들과 다른 외모에서 쉽게 느끼는 콤플렉스, 대부분 아침에 시원하게 볼일을 봐야 하는 습관…’.

국내에서 약을 파는 외국계 제약업체들이 상품개발이나 마케팅을 할 때 고려하는 한국인의 특성들이다. 실제로 한국노바티스는 한번에 확실한 약효를 원하는 한국인의 화끈한 성격에 맞춰 지난해 3월 무좀치료제 ‘라미실 원스’를 내놔 재미를 쏠쏠하게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시장보다 한국에 앞서 출시했다. 원래 무좀은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지속적인 치료약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한번 바른 뒤 무좀이 즉시 낫기를 원한다. 또 대부분 치료를 계속하지 않기 때문에 무좀은 쉽게 낫지 않는 병으로 인식됐을 정도다. 한국노바티스는 이런 성향에 맞춰 한 번 바르면 13일간 약효가 유지돼 치료가 되는 무좀약을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0.4%에서 지난해 말 누계로 5.9%까지 올라섰다.

한국인의 또 다른 특징은 남과 다른 외모에서 느끼는 콤플렉스다. 대머리가 그렇다. 서양의 경우 백인 중년 남자의 62.5%가 대머리인 것과 달리 한국은 15% 정도로 적다. 대머리 비율까지 낮다 보니 주목을 끌 가능성이 커지고, 덩달아 차별도 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양인은 상대적으로 탈모를 치료할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데 비해 한국인은 이를 치료하고 싶은 욕구가 훨씬 크다는 게 제약업체들의 설명이다. 한국MSD도 이 같은 한국의 탈모치료제 시장을 눈여겨보고 먹는 탈모 치료제 ‘프로페시아’를 내놨다. 2000년 국내에 전문의약품(구매 때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으로 출시된 첫해 매출이 47억원이었고, 지난해에는 150억원대를 기록하며 3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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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매일 아침 한 번에 시원하게 볼일을 봐야 하는 한국인의 생활습관 덕을 톡톡히 봤다. 많은 한국인은 규칙적인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도 매일 아침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또 한 번에 배변이 원활하게 나와야만 본인이 변비환자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런 심리를 겨냥해 ‘밤 사이 작용해 아침에 효과 보는 변비약’이라는 둘코락스를 1976년에 내놓고 지금까지 지속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둘코락스는 국내에서 30년 넘게 부동의 1위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베링거인겔하임의 전 세계 현지법인 중 한국법인의 매출 순위는 지난해 19위다. 하지만 변비치료제인 둘코락스 매출만큼은 미국·독일에 이어 3위다. 서양인과 비교해 변비환자 발생률이 비슷하면서도 한국에서 유독 이 변비치료제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양인보다 탄수화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겨냥한 약품도 인기다. 비만치료제 시장에 후발 주자로 나선 한국애보트의 ‘리덕틸’이 대표적이다. 2001년 리덕틸 출시 당시에는 경쟁사 제품이 시장을 선점했다. 리덕틸은 뇌중추에 영향을 미쳐 평소 식사량의 80%만 먹어도 포만감을 주면서 숟가락을 놓게 만든다. 그러나 경쟁사 제품은 음식물로 섭취한 지방의 30% 정도가 체내에 저장되는 과정을 억제해 배변으로 내보내는 비만치료제다. 경쟁사의 제품이 서양인만큼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에게서 효과가 나타나는 데 비해, 리덕틸은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든 가리지 않고 포만감을 느끼게끔 착각하게 만들면서 소식을 유도한다. 경쟁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인과 궁합이 맞는 치료제라는 설명이다.

리덕틸은 출시된 지 1년 만에 전세를 뒤집었다. 리덕틸 마케팅팀의 박희정 과장은 “서양인에 비해 채소와 탄수화물 위주의 생활습관을 고려해 ‘한국인에게 맞는 비만치료제’로 마케팅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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