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구조조정 지금대로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경제수석과 정책기획수석의 자리를 맞바꿔 이제까지 다소 산만하게 말만 무성했던 구조조정을 실행에 옮길 태세를 내비쳤다. 과연 이번에는 결과가 나타날까 기대가 되지만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무원칙성을 보면 앞날이 걱정된다.

최근 나타난 무원칙성의 대표적 사례는 무엇보다 새한종금과 동아건설의 경우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과연 경제팀의 라인업이 잘못된 탓인지, 혹은 저항세력이 많아서 그런지, 혹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는지 원칙이 없어서인지 살펴봐야 할 때가 됐다.

올해초 집권한 김대중정부는 사실상 지난해부터 기능해 왔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왜 아직 부실기업 하나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물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 지원이 지속되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제때 정책건의를 안했다고 이전 정부의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비서관이 구속된 후라 신정부의 경제책임자들은 과연 직무유기를 안할지 주목을 받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사후처리의 본질에 있어 한보나 기아와 새한종금 및 동아건설이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도 정리하지 못했고 현정부도 아직은 정리를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정권을 잡기 전이나 책임을 지는 자리에 가기 전에는 모두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고 마땅히 부실기업은 정리돼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면 바뀐다.

이는 또 왜 이런가. 갑자기 국가경제를 걱정하는 정도가 달라졌다기보다 정리했을 경우의 충격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건설을 정리하자니 당장 서울은행 문을 닫을지 모르겠고 새한종금을 파산시키자니 산업은행의 부실누적이 염려된다.

그러나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보나 기아를 정리하지 못한 채 질질 시간만 끌어 결국 국제통화기금 (IMF)에 손을 벌리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좁게만 보면 부실 대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수십만명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 손을 못대면 수십만명이 아니라 수천만명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는 것을 왜 망각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결국 구조조정의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엉터리 기업의 부실한 경영과 내돈이냐, 네돈이냐 식으로 나눠먹고 기준없이 대출해준 부실금융기관의 방만한 경영의 뒷감당을 다시 한번 국민이 하게 된 꼴이다. 국채를 발행한다고 결정하는 순간에 과연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에 국민의 돈을 쏟아 붓는 것이 타당한가를 따져보았는지 참석자들에게 묻고 싶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 결과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5개 시중은행이 지급한 명예퇴직금은 3천5백여억원 (1인당평균 1억9천5백만원) 으로 정부가 이들 은행에 지원한 금액의 4.5%나 된다. 아직도 자본금은 다 까먹은 껍데기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이 빚잔치를 하면서 높은 임금을 구가하고 있다.

많은 근로자의 임금이 20%가 넘게 줄고 또 직장을 잃고 있는데 이 와중에 남의 돈으로 즐기는 구석을 놔두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의 확률을 가진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혁의 명분과 실제가 가능한한 일치해야 하고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의 주체가 되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또하나의 덕목은 그 자리에 들어가면서 아예 나갈 날을 정해 놓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몇사람만이 지지하는 개혁을 추진하려면서 어떻게 보신 (保身)에 신경을 쓰는가.

아예 불가능한 자리지키기를 하다보면 개혁도 못하고 결국 자리도 못지키고 나중엔 평생 지켜온 이름도 더럽히게 된다. 이 점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진정 구조조정만이 우리 경제의 살 길이라면 이제 새 경제팀이 '필요한 악역' 을 하도록 힘을 모아주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사회가 수용해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를 '복지부동 (伏地不動)' 이라 불렀지만 최근 상황은 더 심각해 아예 땅과 한몸이 된 '신토불이 (身土不二)' 라 부른다고 한다. 개혁은 동조자가 필요하다.

관료를 장악하려면 역시 제대로 된 인사와 승진의 원칙을 세워야 하고 사회 각계층의 지도자들에게도 개혁에 동참할 명분을 제시하고 실제적으로 본인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장현준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