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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민부담 적은 구조조정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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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해 50조원의 국채를 발행키로 결정함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시작되게 됐다.그러나 국채의 발행이란 결국 어떤 방법으로 소화하든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귀착되는 일이다.

따라서 이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라 그 내용이 무엇이고, 국민에게 어떤 부담이 돌아가고,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소상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50조원이라는 재정부담은 약 4백50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총생산 (GDP) 의 11.1%로 미국의 경우 (90~95년) 의 6%나 스웨덴 (91~93년) 의 4.7%의 두배를 넘는 비중이다.

현재 조세부담률이 21%에 육박한데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세수감소를 감안하면 증세 (增稅)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아무리 정부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호도해도 중앙은행에 의한 채권소화 유혹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다른 형태의 세금인 인플레가 크게 염려된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인수하면 다른 부문에서 통화를 환수해서 중화시키지 않는 한 통화증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실이 그렇다면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고 최소한 국민이 자기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왜 부담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게 한 후에 정부정책에 협조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에 합당한 방법이다. 우리는 엄청난 국민부담을 요구할 국채발행안이 종국에는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충분히 문제점들이 토의돼 각 정당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기를 기대한다.

그 이전에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은 다음과 같은 기준에 비춰볼 때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국채를 발행해 국민의 부담을 지우기 전에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신속한 적기 시정조치와 합병 및 정리계획이 더 분명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은행을 살리기 위해 동아건설에 대한 협조융자를 하면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지 대내외에 구조조정의 원칙을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

둘째, 국민부담에 앞서 엄청난 부실을 일으킨 장본인에 대한 비용부담을 먼저 실행에 옮겨야 한다.

즉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자금이 부실채권의 매입이나 증자를 불문하고 살릴 만한 기관에 집중돼야 하고 차제에 정리될 금융기관은 과감히 퇴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원을 받는 기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자본금을 줄여 주주와 예금자에게도 책임을 공유시키고 경영자를 바꾸는 것은 물론 종업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고 전면적인 고용조정도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셋째, 국민부담보다는 정부의 공기업매각이나 공공부문 예산감축과 외자도입을 선행해 구조조정 재원 확충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넷째,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현재 정부가 2000년까지 지급보증을 한 예금의 원금 및 이자보장은 당장 수정돼야 한다. 그래야 부실금융기관의 고금리경쟁이 없어진다.

정부가 국민부담으로 부실금융기관과 여기에 야합해 고금리를 쫓아다니는 고객의 이익을 보장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내달부터라도 앞으로의 예금에 대해선 일정액의 원금만 보장하게 개정돼야 금융기관의 경영이 정상화된다. 정부 일각에서는 부실기업이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면 금융기관에 쌓일 부실채권의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고 재정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 할 때까지 해보고 결국 중앙은행의 발권력, 즉 돈을 찍어 인플레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당장 저항이 적고 부정적 효과는 나중에 나타나고, 인플레로 기업부채의 부담도 줄이고 금융구조조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므로 그 유혹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 길이 아니다. 고통스러워도 장사가 안되는 기업은 망하고 잘못 대출해준 금융기관도 원칙대로 쓰러지는 전례가 확실히 만들어진다는 전제조건 아래 국민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일의 순서다.

따라서 당장 내일이라도 기업이든 은행이든 정리되는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국민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다.또한 국채도 가급적 인플레를 수반하는 중앙은행이 아닌 시장에서 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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